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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연구보다 연구성과 묶는 ‘싱크넷’으로 간다

등록 2008-09-08 23:54수정 2008-10-17 17:42

지난 6월26일 저녁 녹색당 친화적인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에서 크리스토프 도베 박사의 강연이 끝난 뒤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이 시민단체의 투명한 운영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베를린/이용인 기자
지난 6월26일 저녁 녹색당 친화적인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에서 크리스토프 도베 박사의 강연이 끝난 뒤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이 시민단체의 투명한 운영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베를린/이용인 기자
[연중기획-변화하는 세계의 진보] 2. 독일
정치재단들 “각 기관들 장점 연결해 최대효과 도출”
연구인력 거의 없어…‘프로젝트’ 형식 효율성 높여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연구 부문의 규모가 컸다. 그러나 이후 규모를 계속 줄여 연구 네트워크 작업으로 비중을 옮겼다. 연구도 이제 네트워크 시대다.”

지난 6월26일 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미카엘 다우더슈테트 경제사회정책부문장은 자신들의 역할을 ‘연구소’가 아니라 ‘연구 매니지먼트’로 정의했다. 연구 결과물을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연구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독일의 사회민주당(사민당) 친화적인 정치재단으로, ‘싱크탱크’의 대표 주자인 에버트 재단 관계자로부터 의외의 답변을 들은 셈이다.

독일 정치재단들이 이론과 정책, 현안 등에 대해 자체 인력만으로 연구·대응하는 것에서 벗어나, 대학과 각종 전문 연구기관, 시민단체의 장점을 네트워크로 묶어내는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민당과 친화적인 에버트 재단을 포함해, 기독교민주당(기민당)과 친화적인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녹색당과 친화적인 하인리히 뵐 재단 등 독일의 대표적인 정당 싱크탱크들은 자신들의 지향점을 ‘싱크넷’(Think-net)이라고 밝혔다.

우선 에버트 재단의 자체 순수 연구인력은 14명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사회정책부문 9명, 역사연구중심부문 5명이 전부다. 독일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알려진 것 치고는 웬지 초라하다.

그러나 에버트 재단이 ‘아키브’ 작업이라고 표현하는 네트워크 기능에는 40여명의 연구 인력이 매달려있다. 아키브 작업은 좁은 의미로만 보면 자료를 확보해 정리하는 것이다. 중앙과 지방 단위의 모든 사민당 회의록, 각급 노동조합의 회의록, 모든 정당과 대학에서 발표하는 논문과 포럼, 학술 관련 회의록, 연구 관련 언론보도 등이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에버트 재단에 모인다.

아키브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모든 자료를 훑어보면서 여론화시켜야 할 의제를 선정한다. 의제가 정해지면 해당 의제를 다룰 ‘포럼’이나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정기적·비정기적으로 학술회의를 조직한다. 학술회의에는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정치인과 일반시민까지 누구나 참여해 난상토론을 벌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연구 결과물이나 정책이 생산되고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이뤄지는 셈이다. 에버트 재단이 현재 조직한 프로젝트만 해도 ‘교육포럼21’,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사회통합 포럼’, ‘가족정책 포럼’, ‘극우세력에 반대하는 포럼’ 등 35개에 이른다.

다우더슈테트 부문장은 에버트 재단의 연구 부문이 ‘싱크넷’으로 진화해 온 원인을 두가지로 꼽았다. 우선 경제적 효율성이다. 그는 “학술적으로 양질을 계속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투자와 에너지가 낭비에 가까울 정도로 들어가야 한다”며 “그러나 제한된 예산으로 모든 주제를 다 연구할 수는 없다”고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또하나는 정당 연구소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다. 다우더슈테트는 “정당 연구기관이 해야 할 일은 대학과 같은 연구 상아탑 노릇이 아니며, 대학과 시민사회, 정치와 시민사회를 연결해주는 교량 같은 것”이라고 규정했다.

독일의 다른 정치재단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싱크넷’을 지향한다는 점에선 에버트 재단과 거의 엇비슷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예산이 부족한 녹색당의 뵐 재단은 자체 연구 인력을 한명도 두지 않고 있다.

지난 6월26일 저녁 7시, 뵐 재단 소속 ‘프로젝트 매니저’ 40여명이 동베를린에 위치한 재단 6층 강당에 모여 크리스토프 도베 박사의 강연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인터넷 매체의 등장으로 시민단체들도 쉽게 비판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정보 공개와 운영의 투명성에 신경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연을 듣던 ‘프로젝트 매니저’에 대한 궁금증은 다음날 재단 관계자를 만나고서 풀렸다. 뵐 재단의 줄리아 셰르프 아시아 담당국장은 “우리 재단엔 순수 연구 인력이 한명도 없다”며 “모든 사업은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하며, 그것이 연구이고 정책 생산이자, 실천이고 정치”라고 소개했다. 전날 강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프로젝트 책임자들인 셈이다. 뵐 재단은 현재 13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에는 학자들이 결합해 녹색 국내총생산(Green GDP) 지표나 기후변화가 세금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정교하게 이론화하는 작업을 한다.

아데나워 재단은 에버트 재단보다 약간 더 많은 20명의 순수 연구 인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연구의 절반 가량은 외부 기관과 공동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토비아스 방거만 시민정치교육 담당 국장은 전했다.

방거만 국장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외부에 프로젝트로 맡기거나 공동연구를 한다”며 “최고의 연구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예산과 인력 제약을 넘어 최고의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독일 정치재단은 싱크넷을 새로운 지향점으로 삼고 있었다.

베를린/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신자유주의 반대 기조로 1년에 3번씩 ‘게릴라’ 토론”

‘메모란둠그룹’의 크바이써

사무실·지도자 없고 후원 안 받아
내년엔 ‘유럽연합’ 주제 백서 내놔

군터 크바이써(사진)
군터 크바이써(사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교수·전문가들의 모임인 독일의 ‘대안경제학 연구집단’은 ‘게릴라’ 싱크탱크라고 불릴만하다. 일년에 세차례씩 모여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 뒤, 백서 발간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는 방식은 네트워크의 전형이기도 하다. 강제성이 있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임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다. ‘대안경제학 연구집단’은 이들이 내는 백서 이름을 따 ‘메모란둠그룹’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6월25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이 그룹의 코디네이터 군터 크바이써(사진)는 “독일의 사회복지 제도 축소에 반대하는 브레멘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75년 그룹을 만들어 77년부터 매년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메모란둠그룹은 딱히 사무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임의 지도자도 없다. 유일한 ‘상근자’인 크바이써가 자택에서 연락과 백서 발간을 위한 모든 실무적인 일을 처리한다.

백서 발간을 위해 6월 말쯤 첫 모임을 가진다. 누구나 참석 가능하지만 대략 40명 정도가 열성적으로 참석한다. 금요일 저녁 6시에 시작해 다음날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 모임에선 이듬해 백서의 주제를 선정한다. 이번 모임에선 세계적인 경기 하강을 다룰 것인지, 내년에 새로 선출하는 유럽연합집행위원장을 계기로 유럽연합 문제를 논의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을 벌여, 유럽연합을 주제로 백서를 만들기로 했다.

11월과 이듬해 2월 모임에선 구체적으로 작성된 논문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이를 바탕으로 5월1일 노동자의 날 이틀전에,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백서 설명회를 여는 것으로 1년 활동을 마무리한다.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금을 납부하는 사람은 대략 1000명 정도이며, 이 중 교수과 연구원이 3분의1 가량이고, 나머지는 노조원이나 일반인들로 구성돼 있다. 독립성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노조나 정당의 후원은 받지 않는다.

이들이 내놓은 대안정책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기조로 삼고 있다. 크바이써는 “부자에 대한 더 높은 세금부과를 통해 사회복지 제도를 확충하고, 근무시간을 짧게 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프랑크푸르트/이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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