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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간섭않는’ 국고지원이 독립성·투명성 원천

등록 2008-09-08 20:47수정 2008-10-17 17:48

지난 6월26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서 1933년부터 45년 사이에 독일 노조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어떻게 나치에 저항하고 도피하며 망명생활을 했는지를 사진과 신문자료 등으로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베를린/이용인 기자
지난 6월26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서 1933년부터 45년 사이에 독일 노조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어떻게 나치에 저항하고 도피하며 망명생활을 했는지를 사진과 신문자료 등으로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베를린/이용인 기자
창간 20돌 기념 연중기획
다시 그리고 함께[4부]
진화하는 세계의 진보 2. 독일
독일 정치재단의 수입 구조
독일 정치재단의 수입 구조
정부가 정치재단 수입 90%이상 지원
모태는 정당이지만 독립적으로 움직여
모든 연구결과는 ‘공공재’…무료공개 원칙

독일 싱크탱크들의 운영 방식은 미국과 확연하게 다르다. 대부분 국가나 노동조합에서 지원하는 예산·기금을 바탕으로 안정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모든 연구 결과물은 ‘공공재’라는 철학에 따라 공개되며,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금을 바탕으로, ‘정치 엘리트’의 요구에 맞춰 정책을 생산하는 미국 싱크탱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우선 독일 정치재단은 국가라는 든든한 재정 후원자를 갖고 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2008년 예상 수입을 살펴보면, 연방·주정부 등에서 지원하는 국가 예산이 1억2060만6천유로(약 1915억원)로 전체 예산 1억2355만6천유로(약 1962억원)의 97.6%를 차지하고 있다. 기부(60만유로)나 행사 참가비(95만유로) 등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거의 무시할만한 수준이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수입 구조도 다르지 않다. 재단의 2008년 예상 수입은 국가 예산 지원이 1억1279만6천유로(약 1791억원)로, 전체 예산 1억1709만4천유로(약1859억원)의 96.3%에 이른다. 하인리히 뵐 재단 역시 2008년 예상 수입 4252만8천유로(약 675억원) 가운데 정부 지원이 4217만8천유로(약 670억원)로 99.2%나 차지하고 있다. 정치재단들은 국가 지원 예산으로 △시민 정치교육 △국제교류 사업△학술활동 등 크게 세 부문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정치재단들에 대한 국가 예산 지원은 나치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나름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비롯됐다. 에버트 재단의 미카엘 다우더슈테트 경제사회정책부문장은 “나치 집권과 2차대전을 겪으면서 독일의 민주주의 교육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졌다”며 “초기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단절된 민주주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정치재단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고 소개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1959년부터 예산 지원을 시작했다. 시민들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을 출발점으로, 정치재단들은 국제교류를 통한 독일의 대외 이미지 개선, 학술 및 연구활동을 통한 사회적 담론과 의제 설정 작업 등을 주도해 나간 것이다.

독일에서 노동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싱크탱크로 꼽히는,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산하의 한스 뵈클러 재단도 상당히 안정적인 재정수입 구조를 갖고 있다. 한스 뵈클러 재단의 2006년도 수입은 4370만유로(약 751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980만유로(약156억원, 22.4%)는 정부가 장학사업 용도에 쓰라고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노동자 대표들이 기업이나 관공서의 경영감독회에 참석한 뒤 받는 사례금이다. 독일노총 연방위원회는 79년 경영감독회에 참여하는 노동자 대표의 사례금 전부를 재단에 기부하도록 결정했다. 2006년 재단 예산의 68.2%인 2980만유로(약 473억원)가 노동자 대표의 사례금으로 충당됐다.

재단의 두가지 재정 원천을 합하면 비중이 90%가 넘는다. 한스 뵈클러 재단은 이런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장학금 지원사업을 비롯해, 경제사회연구소(WSI)와 거시경제정책연구소(IMK)라는 걸출한 두 싱크탱크를 운영하고 있다. 경제사회연구소는 노동문제 분야에서, 거시경제정책연구소는 케인즈주의 경제학 분야에서 독일의 대표 연구소로 인정받고 있다. 노동자 대표가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에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동결정제도’, 정책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노조 지도자들의 자각과 의지 등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독일의 싱크탱크들. 사진  한스뵈클러 재단이 위치한 독일노동조합총연맹(위에서 왼쪽),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위에서 오른쪽),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아래에서 왼쪽), 하인리히 뵐 재단(아래에서 오른쪽).
독일의 싱크탱크들. 사진 한스뵈클러 재단이 위치한 독일노동조합총연맹(위에서 왼쪽),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위에서 오른쪽),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아래에서 왼쪽), 하인리히 뵐 재단(아래에서 오른쪽).
싱크탱크들은 소속 기관과 거의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정치재단의 경우 특정 정당의 선거에 개입하거나 일상적인 정당활동은 하지 않는 것을 내부 불문율로 여기고 있다. 모태는 정당이지만, 국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기 때문이다. 아데나워 재단의 토비아스 방거만 시민정치교육 담당 국장은 “직접적인 선거 참여는 불가능하며, 선거 때 정당으로부터 ‘동원’되거나 여론조사를 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물론 특정 정당과 친밀도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에버트 재단이 주최하는 포럼이나 토론회에는 사민당 정치인이나 사민당 당원이 많이 참여하는 식이다. 그러나 미국처럼 싱크탱크 연구원들과 정부 각료들이 서로 오가는 ‘회전문 인사’는 거의 없다고 재단 관계자들은 전했다. 다우더슈테트 경제사회정책부문장은 “정부와 연구소 사이에 인적 교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에선 노조에서 일하다 정부 부서로 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소개했다.

연구 결과물은 모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온라인 자료 이용은 무료이고, 출판물도 거저 배포한다. 에버트 재단이나 아데나워 재단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국가 예산으로 재단을 운영하기 때문에 연구결과 공개는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다우더슈테트 부문장의 말을 들어보면 연구 성과물의 대중 공개에 대한 이들의 입장이 얼마나 확고한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도 미국 싱크탱크처럼 중앙 정치 컨설팅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마저도 다른 정당들과 모든 사람한테 공개한다. 그것도 국가예산을 사용한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탄탄한 재정과 운영의 독립성, 연구 결과물의 공개성 원칙이 독일 싱크탱크를 움직이는 세가지 축인 셈이다.

베를린/이용인 기자 yyi@hani.co.kr


“노총 이해와 상충돼도 중립적이고 공정한 연구”

독일노총 산하 한스뵈클러 재단

호른(사진 왼쪽)  라이너 융(오른쪽)
호른(사진 왼쪽) 라이너 융(오른쪽)
지난 6월24일 독일 서부의 중심 도시 뒤셀도르프에서 만난, 독일노총 산하의 한스 뵈클러 재단 관계자들은 연구자를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학문적인 질적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구스타프 A. 호른(사진 왼쪽) 거시경제정책연구소(IMK) 소장과, 인터뷰에 배석한 라이너 융(오른쪽) 재단 대변인의 답변을 편의상 구분하지 않고 종합해 소개한다. 사회정책과 노사관계 등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경제사회연구소(WSI)는 독일 노총 산하에 주식회사 형태의 연구소로 있다가 1995년 한스 뵈클러 재단의 연구소로 조직이 개편됐다.

-연구 인력 규모는?

“경제사회연구소에는 17명 정도의 연구원이 있으며, 거시경제정책연구소엔 10명이 있다.”

-연구원 채용 때 자격 조건은?

“꼭 박사급일 필요는 없다. 노동조합 같은 곳에서의 현장 경험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독일노총에 소속된 연구소이기 때문에 노동문제나 수요 중심 경제학에 관심있는 연구원들이 주로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문적인 질적 수준이다. 우리는 학술적으로 굉장히 공정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노조 위임을 받아 하는 연구가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연구원 월급 수준은?

“일반 연구원들은 세전 기준으로 월 평균 4500유로(약 712만원) 정도다. 다른 연구소 연구원들과 비교하면 많은 편이지만, 교수급들 연구자와 비교하면 높은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원하는 기간 만큼 (평생) 일할 수 있다.”

-이직율은?

“지난 10년 동안 두세명 정도가 이직했는데, 대부분 교수직으로 옮겨갔다. 20~30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연구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공정한 연구’를 하다보면 노조와 충돌을 겪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연구 결과가 노총의 이해와 상충되는 경우는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노총의 정책과 위배되거나 모순적인 결과가 있으면 우선 내부적으로, 비공식적으로 독일노총에게 결과를 사전에 알린다. 그런 다음 대중매체에 공식적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연구 결과가 일반 국민들에게도 설득력이 있어야 정책으로 연결될텐데.

“연구 주제를 선정할 때 학계나 전문가들을 움직이는 내용들이 아니라, 국민들과 노조들을 움직일 수 있는 내용들을 고른다. 또 연구 결과물들이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납득할 만하도록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중립적이고 공정한 연구가 이뤄졌는지가 중요하다.”

뒤셀도르프/이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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