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젊은이] ② 일탈
[열쇳말로 본 새터민 젊은이] ② 일탈
163㎝의 작은 키에 마른 몸매의 새터민 조민혁(가명)씨는 올해 스물여섯살이다. 하지만 까무잡잡한 얼굴이 얼추 서른 줄은 돼 보인다. 거칠게 살아온 흔적이다.
그는 지난해 7월 1년5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를 나왔다. 다 그놈의 의리 때문이었다. 2004년 어느날, 알고 지내는 새터민에게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괴롭히니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흉기까지 등장한 큰 싸움판이 벌어졌다. 같은 새터민인 상대방은 싸움이 끝난 뒤 화해하는 듯하더니, 얼마 뒤 조씨를 고소하고 말았다. 그는 꼼짝없이 감방 신세를 져야 했다.
1998년 북한을 탈출한 뒤 4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조씨는 탈북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 폭행 혐의로 여러 차례 구류 처분을 받았다. 그래도 중국에선 교도소 신세를 진 적은 없었다. 톈진, 상하이 등지를 전전하면서는 한국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얻어 썼다. “가족이 아프다”는 둥 거짓말을 하기도 했으나, 그는 나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계형 범죄’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생 끝에 2002년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조씨는 열심히 살아볼 요량이었다. 싱크대 가공회사, 프린터 잉크충전 업체, 렌즈코팅 업체에 취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고용주도 그런 조씨를 좋게 보지는 않았다. “일을 잘 못한다”거나 “고생한 것에 비해 눈치가 없다”는 등 그를 향한 뒷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조씨는 결국 참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기 일쑤였다.
“새터민 대부분이 덩치가 작다 보니 남한 사람들이 얕보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북한말까지 쓰고 있으면 지방에서 온 어리숙한 촌놈 취급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은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조씨의 주먹에 다시 불끈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때론 조씨가 먼저 시비를 걸어 싸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회의 일탈행위자가 돼갔다.
그에게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에 가기 전 여덟달 가량 일한 당구장 주인은 그를 양아들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보살펴줬다. 하지만 출소 뒤 차마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장준오 박사는 “새터민들은 남한 사회에 들어오자마자 급격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문화·심리적 충격을 겪으며 적응이 쉽지 않다”며 “북한에서는 화해하고 지나갈 수 있는 폭행 사건이 남한에서는 처벌 대상이 되는 등 법체계의 차이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조씨는 “가정도 이루고 싶고 열심히 살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안 된다”며 “한 번씩 어긋날 때마다 고쳐줄 형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인터뷰를 마친 조씨는 얹혀사는 친구의 집을 향해 종종걸음을 옮겼다. 그의 그림자가 인도 위를 함께 달렸다. 전종휘 기자, 김외현 수습기자 symbio@hani.co.kr
새터민 212명 조사. 남한 생활방식 어려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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