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께부터 “100만원짜리 프린스가 10억짜리 벤츠 마이바흐를 들이 받다”는 제목으로 인터넷 나돌아 화제가 되었던 사진. 출처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피해자여도 거액 토해내는 ‘희한한 자동차보험’ 이대로 좋은가
이아무개(38)씨는 10여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자지만, 외제차가 주변에 지나갈라치면 일단 피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이씨가 피해자라 하더라도 막대한 수리비를 물어줘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씨의 운전태도가 ‘좀팽이’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이씨의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지난 3일 <문화방송> 시사매거진 ‘2580’의 ‘이보다 더 안타까울 순 없다’ 편이 방송된 이후, 이씨는 일순 안도했다. “도로 위에서 나만 좀팽이 운전자는 아니었구나.” 그렇지만, 이씨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값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은 내가 아닌데, 내가 왜 외제차를 보면 겁을 먹어야 하나?”
외제차 한번 잘 못 받으면 알거지 되는 ‘자동차보험’?
자전거를 타고가다 벤츠 오른쪽 조수석 문을 10cm 긁은 75살 노인은 수리비로 2500만원을 청구받았다. 대학로에서 벤츠E320과 충돌한 누비라 운전자는 과실이 20%로 ‘피해자’였지만, 420만원을 오히려 토해내야 했다. 경부고속도 서울톨게이트 부근에서 베엠베525를 박은 쏘나타 운전자는 3540만원의 청구서를, 대전에서 롤스로이스와 충돌한 스타렉스 운전자는 3545만원의 수리비 견적을 받았다. 이들이 자동자보험에 가입해 수리비 일부를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보장한도를 2000만~3000만원으로 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현금으로 토해내야 했다. 방송에 소개된 사례들이다.
‘만약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 외제차와 충돌했을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티코와 외제차가 1:9의 과실로 접촉사고가 나서 각각 100만원, 1000만원의 수리비 견적이 나왔다고 치자. 티코 운전자의 경우 자기차 수리비 10만원(100만원의 10%)과 외제차 수리비 100만원(1000만원의 10%)를 부담해야 한다. 외제차 소유주는 과실이 큼에도 90만원의 수리비만 상대방에게 지불하면 된다. 상당수의 보험가입자가 외제차와 접촉사고가 났을 경우, 보험이 아니면 수천만원의 수리비와 대차료를 감당할 길은 거의 없다. 특히 외제차 주인의 수리비와 수리기간 동안 쓰게 될 렌트카 비용까지 물어줘야 하는 경우, 부담할 비용은 더 커진다.
손해보험 외제차 전담자들은 외제차의 경우 범퍼나 도색 긁힘 등의 단순한 찰과상 수준의 사고에도 보상한도 2000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외제차 부품 공급이나 수립을 수입업자가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도 얽혀있다. 실제 보험개발원이 2004 회계연도 기준으로 외제차의 수리비가 국산차의 2.7배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손해보험협회 안성준 대리는 “외제차 대물사고 배상액이 큰 문제는 보험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외제차 수리비가 턱없이 비싼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하려면 고보장 상품 가입하는 수밖에?
자동차보험이 보험으로서의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가?
대물한도가 큰 상품에 가입해 보장한도를 넓히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보험사들도 최근 들어서는 5000만원 이상 고보장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추세다. 2001년 5000만원 보장한도 보험가입자 비율은 1.4%, 1억원 보장한도는 1.5%에 그쳤지만, 지난해 말 각각 17.3%와 26.1%로 크게 늘었다. 반면 2000만원 한도보험은 2001년 44%에서 지난해 말 4.7%로 점유율이 급락했다. 이는 보험회사들이 매달 1000원~2만원 가량을 더 내면 대물한도를 늘려주는 상품을 속속 개발했기 때문이다. 동부화재의 경우 1만5천원 가량을 더내면 대물한도가 5천만원으로 늘어난다. 삼성화재의 ‘A-Top 자동차보험’, 동부화재 ‘참좋은 자동차보험’ 등은 보험료가 일반상품에 비해 30~40%까지 높지만, 자동차 대물사고시 무한배상을 해주는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한손해보험협회 안성준 대리는 “자동차 배기량에 따라 보험료 테이블이 산정되기 때문에 보험체계의 문제로만은 볼 수 없는 측면이 많다”며 “보험가입자들이 대물한도가 큰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보험개발원 자동차보험본부 정태윤 팀장도 “기본적으로 높은 한도의 대물배상 보험을 들어야 한다”며 “외제차뿐 아니라 고액사고 가능성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보험료는 보험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배기량에 따라 보험요율이 정해지며, 여기에 차값을 곱하는 선에서 정해진다. 예를 들어 2000cc의 보험요율이 3%이면, 국산차 차값 2000만원을 곱하고, 외제차는 차값 5천만원을 곱한 가격이 보험료로 책정되는 셈이다. 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 국산차와 외제차의 수리비는 보험료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 10배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에 따라 외제차의 보험료를 대폭 올려야 한다는 주장 또는 보험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보험 체계 ‘국가관리시스템’으로 바꾸자” 제안도
보험소비자협회 김미숙 회장은 “대물한도를 큰 상품으로 가입하는 것은 보험사 배불리기이며, ‘적은 돈으로 대물한도를 늘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장은 보험회사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보험회사들이 지급한 보상액을 보면 83%가 100만원 미만에서 지급되고, 97%가 1000만원 미만”이라며 그동안 보험회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20년 동안 2000만원 한도를 의무가입(현재 1000만원)으로 하고 있어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이 상품에 가입했지만, 자신이 내는 보험료에 비해 혜택은 받지 못했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그는 “보험회사들이 대물한도를 늘리는 제품을 고객에게 가입하도록 권유할 것이 아니라 대물한도를 넘어가는 사고에 있어서도 100% 보상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무한보상의 방안이 손보사의 출혈을 가져온다면, 사고를 낸 가해자의 향후 보상금을 이후에 분할 납부하거나 할증하는 방법으로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험소비자협회는 국가 단위의 ‘자동차보험관리공단(가칭)’ 설립을 제안했다. 김 회장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자동차보험은 건강보험처럼 국가에서 관리·운용해야 자동자보험 가입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손보사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며 “외제차 접촉사고에 대한 국산차 운전자들의 심리적·경제적 안정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손해보험사별 자동차보험료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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