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들머리의 한 성인오락실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영세 봉제공장 지대로, 서민들이 삶을 꾸려가는 이곳에서도 10여개의 성인오락실과 성인피시방이 성업중이다. 특별취재반
[비상등 켜진 도박 공화국] ③ 게임에 중독된 ‘서민의 마을’ 창신동 르포
지난 26일 찾아간, 영세 봉제공장 지대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창신동. ‘서민의 마을’에도 ‘도박 바람’은 거세다. 지하철 동대문역 2·3번 출구로 나오면 마주치는 창신시장을 중심으로 반지름 50m 안팎에 성인오락실과 성인피시방 13곳이 성업 중이다. 최근 생긴 곳만 4곳이다. 대신 동네 사랑방이던 미용실도 1년 전 없어졌다. 간판은 그대로다. 들어가면 상품권 환전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불황에 시달리는 봉제공장 사장들은 가까스로 챙긴 직원 월급까지 ‘판돈’으로 쏟아붓고 있다.
이날 오후 4시30분께 들른 ㄹ성인피시방. 게임기 70대 앞에 30여명 가량이 앉아 있었다. 50대~60대 초반 남성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만난 40대 여성이 뜻밖에도 말문을 열어줬다. 일감이 없어 놀러 왔다는 그는 직원 4명의 봉제공장에서 일한다. “이거 여자들은 싫어해요. 미용실 가보세요, 만날 이 얘기거든. 남자들이 수금해도 안 갖고 오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 이거만 하는 거야. 우리 사장님도 그래요.”
‘ㅎ엄마’로 불리는 한 여성(41)은 부부가 함께 15년 동안 운영하던 봉제공장을 최근 접었다. 남편이 성인오락실에 드나든 지 딱 1년 만이다. 고교생 딸을 둔 이들은 현재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다.
‘입문’ 반년만의 중독 순식간 공장 말아먹고
사채 빚더미 앉기도 사장도 직원도 백수
“여기, 정말 다 망했어 정부는 아는지 몰라…”
소년 시절 ‘시다’로 창신동에 발을 들였던 하아무개(44)씨의 당시 꿈은 미싱사를 거쳐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10여년 전 마침내 그럴싸한 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그 꿈은 1년 전 들어온 ‘바다이야기’(성인오락실 게임의 한 종류)가 송두리째 앗아갔다. 입을 닫은 하씨 대신 친구 박아무개(39)씨가 말했다. “온종일 오락실에만 앉아 있는 거야, 그때부터 망한 거지. 채 1년이 안 걸렸어. 처음엔 오락실 다니다가 이젠 또 피시방으로 다니데. 한달에 300~400(만원) 넘게 잃더라고요.”
직원들 월급은커녕 세금도 못 내는 하씨의 공장에 일감이 들어올 리 없다. 직원 10명도 대부분 떠났다. 박씨는 “이렇게 백수 된 사장들이 많다”며 “내 주위에만 4~5명”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빚을 안 진 것만도 다행인지 모른다. 봉제공장에 밀리오레 입점한 옷가게까지 경영했던 김아무개(44)씨도 자기 돈 6천만원을 잃었고, 도박장에서 단골에게만 대주는 사채를 쓰다가 지금은 빚더미에 앉아 있다. 성인오락에 맛을 들인 지 불과 4개월 만이었다. “100만원에 월 15%예요. 이 사채는 떼어먹지도 못해. 내 친구들 업주들도 오락에 손댄 애들은 100% 망했다고 보면 돼.”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경찰 있으면 뭐해요. 신고돼도 오기 전에 주인들이 먼저 다 아는데. 단속해도 서버 특성상 손님들은 끊기지 않고 게임을 쭉 할 수 있어요. 정부가 아는지 몰라. 서민들 다 망가지고 있어요. 여기, 정말 다 망했어.”
일부는 공장을 접고 오락실 사업에 아예 뛰어들기도 한다. 악순환이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기존의 불법 게임장이 서울 중심에서 외곽이나 경기, 천안, 원주 등 지방의 재개발 주택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지난 두달 사이 강서·중랑·동대문구 등 외곽에서 사행성 도박장 수가 가장 많이 늘었다. 서울경찰청 집계로는, 지난 5월 각각 40~50여곳에서 이달엔 80~100여곳으로 갑절 가까이 급증했다. 이곳은 기초생활 수급자 규모가 수위를 다투는 서민 주거 지역들이다.
전국적으로 병적인 도박자만 60만명, 도박으로 문제를 겪는 인구는 18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런 통계도 성인피시방이 활개를 치기 전인 지난 1월 추정치(심원섭 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일 뿐이다. 도박심리 치료연구소인 ‘유캔센터’의 탁성현 과장은 “요즘 성인오락실, 피시방 중독자들의 경우 가장 큰 특징은 ‘빠르게 간다’는 것”이라며 “카지노 같은 걸로 중독 판단을 받기까지 10~20년이 걸리는데 요즘 게임은 반년 만에 중독이 된다”고 말했다.
창신동의 차경남 동대문의류봉제협회 전무이사는 “규모가 작아도 대체로 자기 공장들을 운영하기 때문에 오락실 13곳에 30명씩만 앉아 있다고 해도 400명의 사장들이 앉아 있는 것”이라며 “성인오락실이 가난한 동네에 쇠파리처럼 꼬여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hours24@hani.co.kr
사채 빚더미 앉기도 사장도 직원도 백수
“여기, 정말 다 망했어 정부는 아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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