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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1세기형 쪽방’ 고시원, 도시 빈민의 ‘외로운 안식처’

등록 2006-07-20 19:32수정 2006-07-20 22:16

고시원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고시생들의 거처이자 목돈 없이 월세로 잠자리가 필요한 도시 빈민들의 주거지가 되기도 한다. 사진은 좁은 고시원에서 시험공부를 하는 고시생의 모습. 이정용 기자 <A href="mailto:lee312@hani.co.kr">lee312@hani.co.kr</A>
고시원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고시생들의 거처이자 목돈 없이 월세로 잠자리가 필요한 도시 빈민들의 주거지가 되기도 한다. 사진은 좁은 고시원에서 시험공부를 하는 고시생의 모습.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외환위기 이후 서민들 둥지
지하철역·주택가로 파고들어
전국 6천여개…20만명 거주
소방법 시행미뤄 화재 사각지대
손아무개(42)씨에게도 아내 이아무개(42)씨와 잡화점도 운영하며 행복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그를 운전연수 학원 강사로 나서게 만들었다. 아내는 피부마사지실을 차렸다. 살림집에 딸린 가게가 여성 전용이라 드나들기가 마땅치 않았다. 아내와 생이별을 하고 송파구 잠실의 한 고시원을 찾은 게 6개월 전쯤이다. 두 딸도 처가에 맡겼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외로웠지만, 손씨는 고시원에서 ‘인생 역전’을 꿈꾸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 바뀌어 고단하기만 한 몸을 누인 채 달콤한 꿈을 꾸었을지도 모를 지난 19일 오후 3시53분. 지하 노래방에서 뿜어져나온 불길과 연기가 손씨의 1.5평 방에 스며들기까진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영영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서울경찰병원의 빈소를 찾은 친구 조아무개(42)씨는 말했다. “사고 나기 5시간 전 전화가 왔어요. 오늘은 저녁에 일하러 나가는데 함께 산책이나 하지 않겠냐고. 제가 바쁘지만 않았다면….” 손씨의 장례식은 21일. 그가 이제 머물 하늘나라엔, 누우면 팔다리가 닿을 듯했던 답답한 벽은 없을 터다.

고시원. ‘21세기 쪽방 또는 판자촌’으로도 불린다. 집 없는 서민들이 마지막으로 찾아 머무는 곳이다. 20일 찾아가본 영등포구 당산동 ㅅ고시원. 너비 1미터의 좁은 층계를 통해 3층에 올라서자 어두운 통로 양쪽으로 20여개의 방이 빼곡하다. 문을 열어보니 방은 일인용 침대와 책상, 텔레비전만으로도 가득 차 있었다. 합판으로 된 벽은 옆방의 코고는 소리조차 막아주지 못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에서 나온 감식반원들이 20일 화재사고로 8명이 숨진 서울 송파구 잠실동 나우고시텔 건물에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에서 나온 감식반원들이 20일 화재사고로 8명이 숨진 서울 송파구 잠실동 나우고시텔 건물에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곳에서 월세 20만원을 내고 1년 가량 살아온 박아무개(37)씨는 “좁은 것만 빼면, 혼자서 조용히 살 수 있고, 비용도 저렴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를 포함해 40명쯤 되는 이 고시원 이용자는 인근 당산동 청과시장 노동자, 건설현장 날품 노동자 등이 대부분이다. ‘고시 준비’나 공부를 위해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서너명에 불과하다.

강동구 길동의 ㄱ고시원에 사는 김아무개(52)씨도 “이혼하고 직장서도 쫓겨난 뒤 이곳으로 왔다”며 “날품일이 있으면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12만원을 내고 창문이 없는 방에서 살고 있다. 창이 있으면 그마저도 3만원이 비싸다. 김씨는 “이 돈으로 잘 수 있는 데가 어딨겠냐”고 되물었다.

1980년대 초반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고시원은 80~90년대를 거치며 각 대학 주변으로 퍼졌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집이나 가족이 없는 빈민, 지방에서 올라온 고학생들이 머무는 곳으로 바뀌었다. 차츰 지하철역 부근, 주택가로도 들어서며 고시원은 또다른 서민의 집이 되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대학가 일부 고시원이 매월 40만~60만원의 고급형으로 변하면서 양극화가 이뤄졌다.

현재 고시원은 전국 6천여곳에 이를 것으로 한국고시원협회는 추산하고 있다. 2004년 소방방재청이 파악한 고시원은 전국에 3910곳. 고시원 ‘인구’도 10만~20만명 가량에 이르는 셈이다. “특히 지하철역 부근은 70% 정도가 노동자, 취업 준비생”이라고 구대회 한국고시원협회 부회장은 말했다.


고시원은 개정된 소방법이 지난 5월30일 시행되면서 다중이용업으로 분류돼 화재 관련 시설을 완비해야 한다. 소화기와 유도등, 휴대용 비상전용등, 비상구 등을 설치하고 완비 증명을 받아야 영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 개정 이전부터 영업을 시작한 곳은 지금도 소방·방화시설 설치 의무가 1년 동안 유예돼 화재 예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소방검사 역시 소방서별로 연초에 계획한 특별검사를 하고 있을 뿐 별도의 정기검사를 하지 않는다. 이재명 임인택 기자, 송경화 김규남 인턴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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