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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고시원 화재’ 사상자 왜 많았나

등록 2006-07-20 09:39수정 2006-07-20 09:45

소방시설 미비, 비상계단도 없어…‘예견된 참사’
“고시원 실태 반영한 소방체계 구축 시급”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고시원 건물 화재사고에서 사망자 8명을 포함해 2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고시원의 열악한 구조가 빚은 참사였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독서실 기능으로 지어진 고시원은 일단 근린생활시설로 허가 및 사용승인을 받은 뒤 경량 칸막이 등으로 수십개의 좁은 방으로 나뉘어 임대되고 있어 화재 발생 위험이 높은 가운데 유사시 대피마저 어려워 대형참사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고시원이 원래의 공부방에서 영세서민들의 거주용 공간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화재 발생 위험도가 더 높아진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날 사고가 난 나우고시텔도 3층에 34개, 4층에 36개의 1.5평짜리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사소한 실수로도 불이 날 가능성이 큰 데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해 있어 대형 참사로 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소방관계자들이 전하고 있다.

건물 중앙에 있는 통행용 계단 외에 별도의 비상계단 대신 완강기를 설치해놓았지만 거주자들은 이번 사고와 같이 다급한 상황에서 완강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고시원 운영자 이모(69)씨는 "비상계단이 없어 소방서에서 완강기를 달라고 해서 달았는데 나도 오늘 사용하지 못했다. 상황이 급해 완강기를 쓸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 고시원에는 복도로만 창문이 나 있어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방이 많은 데다 외부로 향하는 창문이 있는 경우에도 고정식 방충망이 설치돼 있어 밖으로 대피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이 고시원이 본래 사무실 용도로 쓰이다가 2년 전 갑자기 고시원으로 용도가 변경됐다는 점에서 숙박시설로는 부적합한 환경에서 무리하게 개조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낳는다.

이 고시원 거주자인 이모(27)씨는 "4개월 전에 여기 들어왔는데 불이 크게 날 것 같아 돈을 더 주고 일부러 창가에 있는 방을 잡았다"고 전했다.

또 20대 고시준비생보다 일용직 근로자, 유흥업소 종업원, 노인 등 30대 이상 장노년층이 주로 거주하고 있었던 점도 피해 규모를 더 키웠다.

야간에 일하고 낮에 쉬는 거주자들은 불이 났을 때 잠을 자고 있어 대응이 느리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 거주자들도 신속한 대피가 어렵다는 것이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한 소방당국의 진단이다.

소방당국은 고시원이 서민들의 주거용 공간으로 성격이 변하자 2002년 10월 소방법 시행규칙에 고시원을 신종 다중이용업에 포함시켜 각 방마다 소화기와 휴대용 조명등을 설치토록 하는 등 특별관리를 해왔지만 스프링쿨러와 같은 소방안전설비 구비를 의무화하지는 않고 있다.

이마저도 소화기와 휴대용 조명등 간단한 소방시설을 비치해 놓는 고시원이 드물다는 것이 고시원 이용자들의 전언이다.

잠실 고시원 건물의 경우 발화지점이 지하 1층 노래방으로 추정되지만 1층 식당과 2층 건설회사 근무자들이 무사히 탈출한 것과 달리 인명피해가 3,4층 고시원 거주자들에게 집중된 것도 이 같은 고시원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방당국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고시원의 현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는 새로운 소방체계를 구축, 더 이상의 인재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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