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사람 마음, 알아요”
100여가구 200만원 모아
100여가구 200만원 모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주민들이 지난 21일까지 모은 이웃돕기 성금. 김영원 기자
“지난해에도 만원, 올해도 만원을 기부했어. 좋은 마음으로 하지. 나도 도움을 받으니까. 더 있으면 더 하고 싶어.”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던 지난 22일 아침 8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엔 집집마다 하얀 김이 폴폴 올라왔다. 지붕 끝 배수로엔 땅으로 떨어지던 물이 팔뚝만 한 고드름이 된 채 매달려 있었다. 차 한대가 눈이 녹지 않은 길을 거북이처럼 올랐다. 인왕산 등산로변에 있는 개미마을은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저소득층과 노인층이 많은데 도시가스가 연결돼있지 않아 연탄과 등유로 매서운 겨울을 난다. 솔 끝마다 얼음 방울이 맺힌 빗자루로 집 앞을 쓸던 김계연(69)씨는 등교하는 증손자를 마을버스에 태운 뒤 손을 흔들었다. 이 동네에만 40여년을 살았다는 김씨는 “겨울 석달이 문제”라며 문을 열어 천장까지 붙여둔 단열 매트를 보여줬다. 집 바깥벽에도 단열재가 덧대어 있었다. 몸이 힘든 탓에 아침·저녁으로 연탄을 교체하기 어려워 바닥에 전기장판만 겨우 깔아뒀다. 설거지, 샤워할 때만 온수를 쓰기 위해 난방을 한다. 10년 전부터 김씨는 성금으로 1만원을 낸다. 김씨는 “증손자를 키워서 기부를 많이는 못 하지만, (나도) 쌀 한 포대 주면 얻어먹는데 기부를 안 해서 되겠나”라며 웃었다.
지난 21일 오후 4시30분께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개미마을’의 한 집 지붕 배수로에 커다란 고드름이 달려있다. 이날 서울의 기온은 영하 15도까지 내려갔다. 김영원 기자
지난 22일 아침 8시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개미마을에 사는 김계연(69)씨가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씨는 박스 몇 개를 펼쳐서 마련해둔 현관에 신발을 벗어둔다. 김영원 기자
김계연씨의 증손자가 쓰는 방 천장과 벽면에 캠핑용 폼 매트가 겹겹이 붙어있다. 김씨는 “겨울마다 결로 현상 때문에 매트에 물방울이 맺혀 책상과 바닥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영원 기자
지난 22일 촬영한 김계연씨의 화장실에 변기 없이 하얀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있다. 김씨는 집안 화장실에 변기가 따로 없어 마을 공중화장실을 매일 이용한다. 김영원 기자
어려운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 마음을 잘 안다고 하지 않느냐.사랑방 격인 동네 슈퍼에서 만난 홍제3동 23통장 구기만(58)씨는 “어려운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 마음을 잘 안다고 하지 않느냐. 모금한다고 얘기하면 싫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대개 자기 형편에 맞춰 1만∼5만원씩 낸다”며 “대부분 독거노인들이다. 사실 우리 동네 주민 입장에선 무리하는 거다. 그런데도 연탄 등 지원받은 게 있으니 보답하는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개미마을에 있는 권용원(75)씨 집에 연탄이 가득 쌓여있다. 김영원 기자
개미마을의 사랑방 격인 한 동네 슈퍼. 지난 21일 찾아간 슈퍼 벽면엔 ‘불우이웃돕기 모금을 하오니 많은 협조 바랍니다.’라는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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