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맛있는 거 사주고 싶을 때마다 모아”
소방서가 돌려보낸 현금 200만원은 기부
소방서가 돌려보낸 현금 200만원은 기부
“저는 예쁜 딸 아이의 엄마이자 1년 전 오늘, 구조대원님들께서 구조해주신 한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은 딸의 생일이자 남편의 기일입니다.”
지난 15일 경기 광주소방서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와플 등 간식과 음료 50잔, 현금 200만원과 함께였다. 편지를 쓴 주인공은 30대 여성 ㄱ씨. 26일 경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중장비 기사였던 ㄱ씨의 남편은 2022년 12월15일 평소처럼 출근해 일하다 지병으로 쓰러졌다. 즉시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를 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옮겼지만 ㄱ씨의 남편은 끝내 숨지고 말았다.
ㄱ씨는 “구조대원분들께서는 숱한 출동으로 저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편지를 시작했다.
ㄱ씨는 “춥게 눈 내리던 그날 추위도 잊고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빨리 구조해주시려고 노력하시던 구조대원분들, 구조 후 구급차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같이 뛰며 조금이라도 더 응급조치 해주시려던 분, 병원에 저를 데려다주시며 놀라지 않게 설명해주시던 모습까지 어제인 것 같이 생생한데 1년이 지났다”고 했다.
이어 “(남편의 1주기인) 이날이 오는 게 힘들고 두렵고 무서웠지만 조금이나마 좋아할 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남편이 아이에게 생일 선물을 준다고 생각하고 남편과 커피 한잔하고 싶을 때, 남편에게 옷이나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을 때 조금씩 모았다”며 편지와 함께 보낸 200만원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ㄱ씨는 “아이에게 아빠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사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날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했다고 인사드리는 게 남편도 ‘우리 아내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며 “마음은 더 많이 하고 싶지만 (남편이 숨지고) 아이를 키우며 없는 살림에 모은 돈이라 감사한 마음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고 썼다.
ㄱ씨는 “부디 부담 없이 편히 받아 꼭 구조대원분들께서 필요한 곳에 써달라”며 “구조대원분들 모두 많은 출동에도 다치시는 분 없이 건강하시길 기도하겠다”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광주소방서는 간식과 음료는 받았지만 200만원의 경우 청탁금지법에 위반되는 까닭에 경기소방재난본부에 신고하고 ㄱ씨를 찾아 나섰다.
음료 배달 업체를 통해 ㄱ씨를 찾아 200만원을 돌려주려 하자 ㄱ씨는 “이미 전달한 돈이니 받지 않겠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소방관들의 설득 끝에 ㄱ씨는 이 돈을 남편 이름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데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ㄱ씨가 경기 광주 소방서에 보낸 음료. 경기광주소방서 제공
ㄱ씨가 경기 광주소방서에 보낸 간식. 경기광주소방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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