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경복궁 담벼락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전날 누군가가 스프레이로 쓴 낙서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서울 경복궁 담벼락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강력한 한파가 변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프레이 오염 성분을 벗겨내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문화재청은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모두 동원해 복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19일 오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보면, 현장 복구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정소영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빠른 시간 안에 스프레이 자국을 지우는 것이 제일 급선무”라며 “물리적인 방법, (약품을 활용한) 화학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경복궁 담벼락 앞에서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들이 전날 누군가가 스프레이로 쓴 낙서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새벽 1시42분께 경복궁 영추문 좌·우측에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를 이용해 ‘영화 공짜’ 문구와 함께 불법 스트리밍 누리집을 연상케 하는 낙서가 발견됐다. 같은 날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담벼락과 서울경찰청 청사 담벼락에서도 스프레이를 이용한 낙서가 발견됐는데 경찰은 모두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남자 1명, 여자 1명인 용의자들을 쫓고 있다. 영추문 왼쪽 담벼락에는 17일 밤 10시20분께 또다시 붉은색 라커 스프레이를 이용한 낙서가 발견됐는데 해당 낙서를 한 20대 남성은 18일 경찰에 자수했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방향 경복궁 서쪽 담벼락에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낙서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문화재청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복구 작업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레이저 장비를 동원한 작업이다. 먼저 화학약품을 묻혀 솔질을 하거나 도드락 망치로 두드려 담벼락 표면에서 스프레이로 오염된 부분을 벗겨내는 초벌 세척을 하고, 레이저 장비로 표면을 미세하게 태운 뒤 스팀 세척을 해준다. 이런 작업을 거친 표면은 기존의 표면과 견주면 새것처럼 조금 도드라질 수 있기 때문에 기존 담벼락 색과 비슷하게 맞추는 색 맞춤 처리까지 해줘야 한다. 레이저 장비는 이날 기준 모두 3대가 확보됐는데 다만 속도가 느린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입구에서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센터 관계자들이 누군가가 스프레이로 ‘영화공짜’라고 쓴 낙서를 지우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는 블라스팅 작업이다. 모래나 호두껍질을 강하게 분사시켜 표면에서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방식인데 정소영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이날부터 영추문 쪽 담벼락에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고궁박물관 쪽 담벼락에 견줘 더 큰 판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블라스팅 작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블라스팅 작업 뒤에도 역시 색 맞춤 처리를 해줘야 한다.
문제는 날씨다. 17~18일 서울의 최저 기온은 영하 12도까지 떨어지는 등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정주 경복궁 관리소장은 이날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기술적으로 담벼락을 원상복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다”면서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날씨로 인해 작업을 하는데 어려움은 갖고 있다”고 밝혔다. 복구 작업을 야외에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자들의 손은 느려질 수밖에 없고 동원된 장비도 추위로 인해 작동을 멈출 정도라고 한다.
복구 작업은 애초 최소 일주일 정도로 예상됐지만, 17일 발생한 추가 훼손으로 인해 더 늘어날 예정이다.
한편, 경복궁 담장 외부에는 14대의 폐회로텔레비전(CCTV)가 설치·운영 중인데, 문화재청은 이번 ‘낙서 테러’ 사건을 계기로 20여 대를 추가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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