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2월 법원장 인사를 앞두고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법원장 추천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 지연 해소가 사법부의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법원장 추천제가 재판 장기화의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 역시 내년 2월 법원장 인사를 앞두고 현행 법원장 추천제 개편을 검토 중이다. 법원 내부에선 재판 지연의 원인을 법원장 추천제에서 찾는 건 ‘오진’이라는 비판과 함께 사법부의 수직 서열화를 깨려했던 사법개혁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원장 추천제는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법부 수직 서열화’를 깨기 위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과거 사법부는 ‘지법 수석부장판사→고법 부장판사→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승진 사다리’ 인사를 운용해 왔다. 이런 인사 관행은 판사들의 ‘충성 경쟁’으로 이어졌는데, 이 때문에 사법부는 대법원을 정점으로 한 수직·관료화된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 사례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사법농단’ 사건이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 이후 취임한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은 권한을 분산하고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 민주성을 강화하겠다며 2019년 법원장 추천제를 도입했다. 각 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 1∼3명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이 가운데 1명을 임명하는 제도였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등장했던 법원장 추천제는 도입 4년만에 재판 장기화의 원인으로 지목받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 후보가 결정되면서 법원장 후보가 될만한 수석부장판사들이 투표권을 가진 후배 눈치를 살피느라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지 못하고, 이 때문에 재판이 지연된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 생각은 다르다. 재판 장기화의 원인은 훨씬 복합적인데다 승진을 목표로 판사들이 과노동 경쟁을 했던 과거 관행은 더이상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 지법 판사는 “법원장 장악력을 높이면 재판 장기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은 환상에 가깝다. 어떤 법원장이 와서 초과 근무를 강요한들 요즘 판사들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포기하겠냐”며 “법관 증원이나 재판 지원으로 풀 일을 법원장 추천제 탓으로 돌리는 건 논리 비약”이라고 말했다.
물론 법원장 추천제도 문제가 없지 않다. 법원 내에서는 법관 인사가 ‘인기투표’로 변질된다는 우려나 법원장 후보 투표를 둘러싸고 법관들의 세력화 조짐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고법 판사는 “법원장 추천제를 보완하고 수정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법원장 추천제를 도입할 때의 문제의식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사법개혁 노력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에서는 이미 법원장 추천제 축소 분위기가 감지된다. 조 대법원장은 오는 15일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방침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 임명이 늦어지면서 내년 1월 정기인사 발표까지 시간이 촉박해졌다. 법원장 추천제의 절차를 다 밟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게 사실”이라며 “여러 방안을 열어놓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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