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2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해병대 군사경찰병과장 보직해임심의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의 항명 사건 재판에서 군검찰이 “(채상병 사건은) 대통령이 개입했더라도 대통령은 그런 권한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언론사 칼럼이나 성명서 등을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정당한 지시에 대한 항명이었는지 여부를 가릴 핵심증거인 대통령실 등 윗선 수사 개입 의혹 관련 수사기록은 법원에 제출하지 않아, 군검찰이 재판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가려 ‘꼼수’를 쓴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군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 목록’과 ‘증거목록’을 보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비화 휴대전화(도청이 안 되는 휴대전화) 화면 갈무리 및 사용내역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의 진술서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의 진술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김아무개 해병대 대령의 진술서 등은 수사기록 목록엔 포함돼 있지만 증거목록엔 포함되지 않았다.
임 전 사단장은 대통령실 등에서 혐의자에서 제외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인물이며 임 전 비서관은 김 사령관에게 “(해병대수사단의 조사결과에) 브이아이피(VIP)가 격노했다”고 말한 인물로 지목된다. 김 대령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결재한 채상병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박 대령에게 요청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기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기 때문에 법원에 ‘수사기록 목록’과 해당재판에서 활용할 ‘증거목록’을 나눠 법원에 제출하는데 ‘수사 외압’ 관련 주요 관계자들의 진술서가 증거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피고인 쪽은 첫 재판 전에 증거목록에 있는 기록만 복사해서 볼 수 있다. 이에 박 대령을 대리하는 김정민 변호사는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의 진술서 등 32개 수사기록을 제출해달라고 군검찰에 요청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지난 27일 군사법원에 냈다.
군형법에는 항명죄를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경우에 적용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당시 박 대령에게 내려진 지시의 정당성 여부인데, 이같은 핵심 기록을 증거로 내지 않은 건 군검찰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군사법원법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대법원 판례 역시 검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법정에 제출해야 하는 ‘객관의무’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군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박 대령에게 한 지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증거를 내지 않은 행위는 검사의 객관의무를 져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군검찰은 박 대령을 비판하는 칼럼과 성명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해병대 수사단장의 법리 무시한 항명’(9월20일)이라는 제목의 언론사 기고글이나 채상병 사건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는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보수단체의 성명서 등이 증거기록에 포함됐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군검찰이 재판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끌고 가려는 것”이라며 “그게 맞는 의견이라면 검찰이 의견서로 내야지 증거로 내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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