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일대에서 열린 금속노조의 ‘2023 불법 파견 대법원 조속 판결 촉구 2차 공통 투쟁’에서 경찰이 노숙 농성에 돌입하려는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가 심야 노숙집회 금지 처분의 집행을 정지해달라며 경찰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정부가 지난 9월 심야시간대(0~6시) 집회·시위 전면금지 방침을 밝힌 가운데 법원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판단을 또다시 내린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디엘이앤씨(DL E&C) 산재사망대책위원회가 서울 종로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 부분금지통고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는 결정을 지난 9일 내렸다. 정부가 야간집회 전면금지 방침을 밝힌 뒤 법원이 경찰의 노숙집회 금지 통고에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법원은 지난 9월19일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심야 노숙집회 금지 처분의 집행을 정지해달라며 경찰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디엘이엔씨 산재사망대책위 쪽은 지난달 18일 서대문역 3·4번 출구 일대에서 11월 6∼17일까지 100여명이 참석하는 ‘디엘이엔씨 산재사망 규탄대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12일 동안 해당 장소에서 24시간 집회를 열고, 특히 10∼11일 이틀간 1박2일 전야제를 개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종로경찰서는 “숙박을 위한 편의시설이 없는 장소에서 주·야간 인도를 계속해서 점유해 집회를 개최할 경우 통행 불편을 초래할 뿐 아니라, 집회·노숙 과정에서 주최자·질서유지인의 통제를 벗어나 음주소란·용변 등으로 인한 무질서, 인근 회사원 및 주변 상업시설 이용객 등과 마찰 발생 등 공공안녕 질서에 위협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며 11일 오전 0시부터 6시까지의 집회를 금지하는 부분금지 통고를 했다.
이에 법원은 “이 사건 노숙집회가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경우에는 집단적 의사 표현의 자유인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허용 범위’ 내에서 옥외집회 금지 통고 처분취소 사건의 판결 선고 시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법원은 “노숙집회의 장소에는 차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차량의 소통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이지 않고, 이 사건 노숙집회의 개최 시간에 비춰 가까운 지역에 다소간의 통행 불편을 넘어 심각한 교통 불편 등을 초래할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인근 시설이나 주민의 안녕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할 만한 구체적·객관적인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대규모 노숙집회 가능성이 있어 시민 불편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대규모 집단 노숙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건 노숙집회 개최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공공의 안녕·질서를 고려해, 이 사건 노숙집회의 참석 인원 및 방식 등을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할 필요성이 존재한다”며 △참가 인원 100명 △통행로 확보 △음주 행위 금지 △질서유지인 10명 이상 배치 △심야시간대 소음 기준 준수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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