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제주구실잣밤나무 ①
60살 된 거목들 330m 숲길, 4차선 확장에 위태
“관광객 위주 행정…경치 가린다며 가로수 없애”
60살 된 거목들 330m 숲길, 4차선 확장에 위태
“관광객 위주 행정…경치 가린다며 가로수 없애”
2023년 10월10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구실잣밤나무 가로수길에 떨어진 잣밤들. 도토리 모양이지만 밤처럼 생것으로 먹을 수 있다.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구실잣밤나무 가로수길.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월정사 앞 가로수길의 구실잣밤나무. 이끼와 일엽초 같은 양치식물이 함께 자란다. 김양진 기자
월정사 앞 가로수길의 구실잣밤나무 잎 뒷면. 앞면은 짙은 녹색이지만 뒷면은 이렇게 옅은 갈색 내지 금색을 띤다.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 주변 구실잣밤나무에 잣밤이 가득 열렸다. 김양진 기자
“1970년대 심어 수십 년을 키운 이 나무들이 만든 아름다운 숲길을 없앤다고 해요. 시민들이 반발하니 옮긴답니다. 2017년 제주여고 구실잣밤나무들이나 2022년 서광로 담팔수들도 옮겼지만 처참합니다. 이렇게 큰 나무는 옮길 때 편하게 하려고 뿌리와 가지를 대부분 잘라냅니다. 옮긴 나무들은 다 죽어가고 있어요. 옮긴다는 건 사실상 갖다버리는 거죠.
시민들이 아끼는 길이라고 하니 고민하는 모습이지만, 이미 토지 매입까지 다 끝냈어요. 추진하려는 의지가 강하죠. 교통량 문제는 일방통행으로 바꿔서 해결하거나 이런 숲길은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오히려 완전 보행길로 바꾸는 게 맞죠.” 이날 현장에 나온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가 말했다.
2023년 10월10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구실잣밤나무 가로수길의 수관(잎과 가지). 김양진 기자
홍영철 대표는 “제주도 행정은 관광객, 차를 타고 다니는 관광객의 관점으로 돌아가는 게 다른 지역과 달라요. 가로수 행정도 그래요”라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4차로인 일주도로엔 가로수가 없어요. 관광객이 차창으로 경치 구경을 한다는 이유예요.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아요. 기후위기 시대에 거주자를 위해 가로수로 녹음을 만들고 도시열섬현상을 완화하고 탄소를 흡수하고 이런 걸 생각하지 않아요. 관광객에게 이국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죠. 그래서 기후에 맞지 않는 워싱턴야자수 같은 걸 심는데, ‘기능’보다는 ‘관광객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죠.”
그는 이어서 말했다. “악순환이에요. 제주도는 개발이 가장 활발한 곳이에요. 차가 막힌다고 길을 넓히면 그 길을 따라 개발되고 금세 교통이 늘어나서 다시 차가 막힙니다. 결국 자연은 훼손되고 부동산 개발업자들만 잇속을 챙기고 시민들은 힘듭니다. 대중교통을 늘려야 하는데, 이용객이 많은 곳에만 버스가 집중되는 문제도 버스회사 눈치 보느라 풀지 못하고 있어요. 손쉬운 도로 확장에만 치중하죠. 가로수는 환경문제일 뿐 아니라 행정·자치 문제고 민주주의 문제더라고요.”
2023년 10월1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 대적광전 옆 구실잣밤나무. 200살로 추정된다.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 대적광전 옆 구실잣밤나무. 200살로 추정된다.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후 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 대적광전 옆 구실잣밤나무. 단청과 어우러진다.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금산. 불기운을 막으려고 사람 출입을 금지한 금산(禁山)으로 종가시나무와 후박나무, 동백나무 자연림이 우거져 있다. 이곳엔 구실잣밤나무는 없다.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금산. 불기운을 막으려고 사람 출입을 금지한 금산(禁山)이다. 후박나무 표면을 양치식물인 콩짜개덩굴이 덮고 있다.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구실잣밤나무 가로수길. 김양진 기자
2023년 10월10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구실잣밤나무 가로수길.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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