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맹탕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부가 27일 내놓은 이번 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 들어 있는 방안 중에는 청장년 간의 세대 갈등과 논쟁이 불가피한 내용이 포
함돼 있다. 이들 방안은 공론화 등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정부안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재정 안정화 방안으로 제시된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이다. 정부는 이번 종합계획에서 “점진적인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며, 인상 수준에 대해서는 공론화를 통해 구체화하되,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그룹에 따라 차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좀 더 구체적으로 “예컨대, 40~50대는 5년에 5%(포인트) 또는 10년에 3%(포인트) 이렇게 인상 폭을 더 높게 해 (더) 빨리 정해진 ‘목표 (보험료) 인상률(현재 9%에서 3~5%포인트 인상)’에 도달하도록 하고, 반면 20~30대는 보험료율 인상 폭도 낮추고 또 오랜 기간에 목표 인상률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일정 연령 도달 때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연금 받을 나이가 임박한 연령대 가입자를 대상으로 더 높은 보험료율 인상률을 적용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부는 청년세대와의 간담회 등에서 “세대 간 부담의 형평성 요구의 하나로 이런 제안이 나왔다”고 배경을 밝혔다. 다만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차등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연금 전문가들은 “듣도 보도 못한 방안”이라며 현실화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졌다. 또 다른 세대 차별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금 전문가는 “얼핏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조처 같지만, 출생 코호트별로 수익비를 공평하게 맞출 수 있을 만큼의 정교한 계산과 정책 디자인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이렇게 하면 (아직 가입도 하지 않은) 지금의 10대는 무조건 손해인데, 20~30대 부담은 덜어주고, 10대 부담은 왜 고려하지 않느냐”고 짚었다. 그는 “공적연금의 세대 간 원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안”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20~30대 표를 인식한 포퓰리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청년세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방안은 ‘세대 형평 및 국민 신뢰 제고’ 과제에 포함된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또는 확정기여방식 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는 대목이다. 복지부는 두 방안 모두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받지 못할 수 있다. 최소한 내는 만큼 받는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청년층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자동안정화 장치는 보험료와 연금액 등을 결정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은 5년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인데, 앞으로는 말 그대로 출산율, 기대수명 증가 속도 등 연금 재정에 영향을 끼칠 주요 변수에 맞춰 연금 지급액과 보험료율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도입해 운용 중이다. 한국 정부 연금개혁안에는 처음으로 등장했다.
국내 연금 전문가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방식과 시기 등 도입 여부를 놓고 찬반양론으로 의견이 갈린다. 재정 안정을 강조하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정권 성격에 따른 임의 개혁보다 규칙적이고 투명하게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며 찬성 뜻을 밝혔다. 반면, 소득보장 강화를 주장하는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성숙하지 않아 소득대체율과 급여가 낮은 상태에서 자동안정화 장치를 적용하면 최소 노후소득이 불가능해진다”며 “시기상조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 확정기여방식(DC) 전환
‘확정기여방식 전환’도 논쟁적인 사안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보험료와 비례하지 않게 정해진 연금액(급여) 수준을 보장한다. 이런 확정급여형을 ‘받을 연금액이 아닌 보험료 수준을 미리 확정하고 기여한 만큼 연금액을 받는’ 이른바 확정기여형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국회 공론화 과정에서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정부는 도입 여부, 시점, 방식 등을 논의하자면서도 세부 내용은 특정하지 않았다.
다수 전문가가 우려를 표했다. “연금제도가 성숙하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는 실익도 없고, 실현 가능성도 극히 적은 방안”이란 뜻에서다. 정부 안은 앞으로 추진 때 “소득보장 약화 방지를 위한 방안도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정세은 충남대 교수를 비롯해 여러 전문가는 공통으로 “확정급여형은 급여를 주는 당사자가 재원 마련의 위험을 책임지는 구조지만, 확정기여형은 급여 가치의 위험을 가입자(수급자)에게 일임하는 방식”이라며 “이는 국가 책임을 방기하겠다는 선언으로서 제도의 본질을 버리겠다는 무책임한 언급”이라고 비판했다.
■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구체안은 없이 “구조개혁과 연계해 모수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이번 정부안은 전체적으로 재정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앞서 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안한 실질 소득을 높일 몇가지 개선 방안도 담았다. 현재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까닭에 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에 대해선 실태조사를 거쳐 사용자와 절반씩 보험료를 내는 사업장 가입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논란이 가장 적은 대목이다.
현재 사업 중단이나 실직 등으로 연금 납부를 중단하다 재개하는 이에게 12개월까지 주는 보험료 지원을 저소득 지역가입자로 확대하고 지원 기간도 늘리는 방안이 그것이다. 정부는 또 노령연금 수급자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A값)을 넘는 소득을 벌 경우, 연금액을 최대 절반으로 깎는 노령연금 감액 제도를 폐지하고 출산(둘째부터→첫째부터) 및 군(6개월→복무 기간 전체) 크레디트를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김윤주 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