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 간 적이 있다. 아주 멀고 먼 나라였다.
어찌나 멀던지 나에게 그곳은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전부를 집어삼킬 듯한 폭포들과 세상 무엇보다 거칠고 당당한 이끼들이 있는 곳. 차가운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던 빙산이 문득 몸을 뒤치는 걸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중에, 어떤 일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야 할 일이 있다면 아이슬란드로 오자.’
무슨 일을 어떻게 잘못해서 도망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다. 그저 예민하고 날카로운 일을 다루는 자의 습관 같은 것이다. 나는 평범한 누구에게나 삶의 귀퉁이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믿는 편이다. 하나의 인간을 구성하던 요소들이 더 이상 그를 지탱해주지 못하는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기어가 몸을 웅크릴 곳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 나라에서 온 한 여자를 기소한 적이 있다. 얼핏 보면 한국인처럼 생긴 깡마르고 작은 여자였다. 여자는 한국인 남자를 만나 연애를 했고 몇 년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의 나라에 있는 원가족과는 연락이 끊겼다. 그 이후 몇 년간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가끔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다가 이웃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거나 그가 사는 아파트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있다가 신고된 적이 있다는 것 정도가 범죄사실 외에 내가 아는 전부다. 그러던 그녀는 어느 날 집 근처 곳곳에 불을 붙였다. 범행을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그녀는 자신을 말리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자꾸만 불을 놓았다. 금방 발각되어 크게 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구속되었다. 이혼 수속 중이라는 한국인 남편은 끝내 그녀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그녀가 먹지도 자지도 않고 내내 울고만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꾸 집으로 가겠다고만 한다는데, 내가 알기로 그녀에게는 집이 없다. 남편은 이미 그녀의 손을 놓았고, 그녀가 불을 지른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녀가 가겠다는 집이 도대체 어딜까. 그녀가 떠나온 먼 나라에 가면 그녀가 마음 놓고 쉴 집이 있을까.
그녀를 조사하기로 한 날, 구치감에서 연락이 왔다. 구치감은 구속된 사람들이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에 나와 대기하는 동안 머무는 검찰청 내의 임시 수용시설이다. 그녀가 검찰청까지는 왔는데 구치감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사를 위해 통역까지 불러놨는데 낭패가 따로 없었다. “우리가 내려가봅시다.” 나는 수사관, 통역과 함께 지하에 있는 구치감으로 향했다. 검찰청에서 일하면서도 구치감에 직접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몇 개의 문을 통과해 들어가자 구치감이 나왔다. 교도관이 난처한 표정으로 철문을 열었다. 노란색 모노륨 장판이 깔린 환한 정사각형의 방이 드러났다. 방안은 환하다 못해 창백한 느낌이 나는 조명 아래 장식도 가구도 없어서 마치 진공의 방 같았다. 그녀는 방의 모서리에 작은 물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씨, 저는 당신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검사입니다.”
그녀는 몸을 더욱 작게 말았다.
“저는 ○○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왔어요. 왜 불을 질렀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아야 당신을 도울 수가 있어요. 저에게 이야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통역이 말들을 전달했다. 내가 알 수 없는 그녀의 모국어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앞으로의 절차들을 설명하고 당신의 진술이 없어도 나는 사건을 기소할 것이라고도 해보고, 한국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도 물어보고…. 온갖 설득을 해봐도 그녀는 꼼짝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까만 눈을 들어 우리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더는 어쩔 수가 없어서 나도 그녀 옆에 앉았다. 앉아보니 바닥이 매끄럽고 보드라웠다. 노란 모노륨 바닥 위로 떨어지는 형광등 불빛이 안온했다. 외부의 어떤 소리도 바람도 와닿지 않는 공간. 그 진공의 밀도가 한치 앞을 나아갈 방도를 찾지 못하는 인간의 작은 몸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듯했다.
‘어쩌면 이곳이 세상으로부터 가장 먼 곳이구나.’
그녀처럼 무릎을 모아 안고 앉아 있으니 내가 뭘 하던 사람인지도 잠시 잊고 까무룩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때 그녀가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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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통역이 바짝 그녀 가까이 귀를 댔다.
“여기가 내 집이야. 나는 여기 있을래.”
그러고는 다리를 쭉 뻗고 길게 누워 한국어와 그 자신의 모국어를 섞어 소리치며 울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계속 같은 말입니다. 여기가 집이라고, 여기 있을 거라고,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고.”
놀란 통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급히 통역해주었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그녀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환하게 쏟아지는 인공의 불빛 아래 작고 가녀린 몸이 마구 퍼덕였다.
구치감은 교도소와 세상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누구도 그 공간에 정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그곳이 집이라고 했다. 말이 되지 않는데, 어쩐지 이해할 것 같았다. 누구나에게 그런 공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세상의 끝이자 시작이자 아무 곳도 아닌 곳!
결국 나는 그녀를 조사하지 못한 채 기소했다. 왜 불을 질렀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멀리 사막의 바람 위로 커다란 별이 뜬다는 그녀의 나라에 가면 꼭 닮은 얼굴의 가족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그녀를 재판에 넘겼다.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한 인간을 재판에 넘기기엔 내가 아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나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들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일이 생기면, 그때는 내가 아는 가장 먼 땅 아이슬란드로 가야지. 내가 가진 옷 중에 가장 따뜻한 옷 한벌이라도 챙겨서 세상의 끝으로 가야지. 거기서 새로 태어나 솟아나는 화산과 만년 전부터 얼어 있던 빙하의 곁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인생의 비극들 앞에 조금은 덜 두려워진다. 나는 조금 괜찮아진다.
그녀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어떤 인연으로 낯선 나라에 와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연인도 정신도 세상과의 연결도 놓아버린 그녀에게 겨우 집이 될 수 있었던 곳이 구치감이라니, 이 서러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사무실로 돌아와 공소장을 쓰는데 차갑고도 안온한 모노륨의 감촉이 손끝에 오래 남아 있었다.
크게 불을 내지는 않았으니 곧 재판이 열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석방될 것이다. 석방된 그녀는 어디로 갈까.
손 닿을 듯 가까운 밤하늘 가득 주먹만큼 큰 별이 뜬다는 그 나라에서 그녀를 닮은 누군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상상해본다. 구치감 말고 아늑한 그녀의 집이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어주기를 바라본다.
대구지검 부장검사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