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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역자’ 운운 들리더니…영천사람 두 번 죽이는기라, 두 번”

등록 2023-10-10 16:52수정 2023-10-10 18:29

영천 보도연맹 사건 신청한 조팔수·권오우씨
10일 1소위에서 영천·진도 사건은 또 보류
왼쪽부터 조팔수, 이숙원, 권오우, 권순화씨.
왼쪽부터 조팔수, 이숙원, 권오우, 권순화씨.
“죄가 있으면, 1950년 당시 기록을 들이대던가요.”

“사건 한참 뒤인 1979년 기록이라잖아요. 그거 조작 아닌가요?”

“확실히 진실규명을 해주세요. 명예회복은 못 해줄 망정 왜 또 죄를 뒤집어씌웁니까?”

“두 번 죽이는 거죠, 두 번.”

10일 경북 영천에서 이른 아침 서울에 온 조팔수(78)씨와 권오우(73)씨 가족이 말했다. 권씨의 아내 이숙원(72), 누나 권순화(79)까지 네 사람은 이날 동대구역에서 케이티엑스(KTX) 열차를 타고 왔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영천유족회 김만덕 회장과 김재광 부회장도 동행했다.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회장 윤호상)와 과거사 단체들이 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조팔수·권오우씨는 지난 2021년 봄 진실화해위에 한국전쟁기 때 아버지가 국민보도연맹원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사건의 진실규명을 신청한 바 있다. 그해 7월께엔 진실화해위 담당 조사관이 내려와 영천 화산면 대안1리 경로당에서 1시간여 동안 함께 조사에 응했다.

김만덕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영천유족회장이 1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회장 윤호상) 주최 집회에서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 회장은 호소문에서 “학살 이후 30년 지난 경찰 기록으로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김만덕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영천유족회장이 1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회장 윤호상) 주최 집회에서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 회장은 호소문에서 “학살 이후 30년 지난 경찰 기록으로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하지만 2년이 넘은 지금까지 진실규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몇달 전부터는 문제가 생겨 계속 보류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역자’ 운운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근엔 진실화해위 이옥남 상임위원(1소위 위원장)이 1979년 영천경찰서 사찰기록(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처형자 명부)을 근거로 영천 희생자 일부를 진실규명 대상에서 제외하려 한다는 뉴스까지 보았다. 이들이 서울에 올라온 이유다.

조씨의 아버지 조달재(1920년대생 추정)씨와 권씨 아버지 권영교(1924년생)씨는 1950년 2~3월께 파출소의 연락을 받고 영천경찰서에 간 뒤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국민보도연맹 명부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는 말만 믿고 떠난 길이었다. “국민보도연맹 가입을 해야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경찰의 강권을 받은 터였다.

당시 두 집은 모두 농사 짓는 집안으로 영천군 화산면 대안1리에 이웃해 살았다. “우리 마을에서 총 3명이 끌려갔는데, 뒷집 사는 김아무개 어르신은 ‘죄없는 데 왜 가냐’고 버티고 안 가서 살았어요.”(조팔수) “죄가 있었다면 거기를 멀쩡한 두 발로 자진해서 갔겠어요? 오전에 가서 도장만 찍으면 오후에 내보내준다고 하니까 안심하고 간 거죠.”(권오우)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회장 윤호상)와 과거사 단체 회원들은 1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관한 유엔 권고안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한국정부가 과거사 관련 법률의 보완, 가해 관련단체의 정보제공 비협조, 배보상의 피해자 배려 부족, 조사기간 연장 등에 관한 유엔인권위원회 파비안 살비올리 특별보고안의 권고안을 겸허히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고경태 기자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회장 윤호상)와 과거사 단체 회원들은 1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관한 유엔 권고안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한국정부가 과거사 관련 법률의 보완, 가해 관련단체의 정보제공 비협조, 배보상의 피해자 배려 부족, 조사기간 연장 등에 관한 유엔인권위원회 파비안 살비올리 특별보고안의 권고안을 겸허히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고경태 기자
이들은 “두 아버지 모두 영천경찰서에 계속 구금돼 있다가 1950년 7~8월경 영천군 임고면 아작골에 끌려가 학살된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했다. 1기 진실화해위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 보고서는 “1950년 8월 7일 임고면 아작골(절골)에서 150여 명이 희생됐다”고 밝히고 있다.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내려왔을 당시 아직도 생존해 계신 마을 어르신 권대홍(97), 권승관(94) 어르신이 죄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보증을 해줬어요.”(권오우) “죄가 있어도 그렇죠. 만약 살인·방화를 했다 해도 수사와 재판 등 절차를 밟아 ‘너 사형’이라고 하면 또 모르겠지요. 이건 뭐 무조건 싸그리 다 죽인 거잖아요.”(조팔수) “진실규명을 받아 꼭 명예회복을 하고 싶어요. 죽은 것도 억울한데 적대행위 부역자라니요.”(권순화)

한편 10일 오전 10시부터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과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을 재심의한 진실화해위 제1소위는 영천·진도 사건보고서의 전체위원회 상정을 또 다시 보류했다. 이날 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진도 사건을 의논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영천 사건은 의논조차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소위는 10월2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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