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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태안 이어 진도·영천…김광동의 ‘부역 낙인 찍기’ 계속되나

등록 2023-09-06 08:00수정 2023-09-06 10:14

경찰 사찰자료로 진실규명 각하 내릴수도
이옥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맨 왼쪽)과 김광동 위원장(오른쪽 둘째) 등이 지난 7월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58차 전체위원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옥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맨 왼쪽)과 김광동 위원장(오른쪽 둘째) 등이 지난 7월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58차 전체위원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위원회도 역사 문제, 역사 사건,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 사안에 관한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우리가 하는 평가도 사회적 혹은 후세대에게 재평가돼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늘 그렇습니다만 최종 결론은 없다고 봅니다.”

지난 8월29일 오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61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한 모두발언이다. 역사에는 최종 결론이 없고 역사적 사실과 인물이 늘 재평가된다는 말은 최근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을 비롯한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이념전쟁에 부합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몰았다면, 진실화해위는 한국전쟁기 학살 희생자들을 공산주의 부역자이자 가해자로 몰고 있다. 낙인 찍기를 넘어 불이익을 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경찰 사찰자료를 인용한 부역 등급을 표기하되 진실규명을 한 태안에 이어, 전남 진도와 경북 영천 사건에서는 경찰 사찰기록을 근거로 일부 진실규명을 각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재평가”라는 지적과 함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전쟁 사건을 관할하는 1소위(위원장 이옥남 상임위원)는 전남 진도의 부역혐의 민간인 희생사건과 경북 영천의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관해 오는 19일 회의에서 심의안건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진도·영천은 지난 7월2일 한겨레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보고서 50여건이 작성 완료됐지만, 부역자 처리지침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2개월 넘게 소위 안건으로 올리지 않은 채 보류하고 있다”고 보도한 지역이다. 애초 1소위는 지난 8월28일 회의를 열어 부역자 처리지침의 확정 여부를 논의했으나, 지침 자체를 만들지 않고 개별 보고서를 상정해 심의하기로 의결했다.

진도의 경우 1969년 진도경찰서가 작성한 사살자 및 가족동향 명부인 ‘대공’을, 영천의 경우 영천경찰서가 1979년과 1981년 각각 작성한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및 ‘신원기록편람’의 처형자 명부를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1소위에서 여당 추천 위원들이 문제삼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진도경찰서 ‘대공’의 처형자 사살개요에 적시된 “암살대원”과 영천경찰서의 처형자 명부에 나온 “살인”이라는 단어다. 이들의 경우 민간인이 아닌 이른바 ‘악질 부역 혐의자’라는 지적과 함께 부역 등급 표기는 물론 진실규명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의 한 조사관은 “진도와 영천의 진실규명 대상자 중 일부가 각각 ‘암살대원’과 ’살인’이라 적혀 있는데, 소위에서 이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만 전체위에 진실규명 상정을 하면 보류된 이들은 각하 등 후속 조처 없이 방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소위에서 합의되지 않을 경우엔 진실규명 대상자 모두 전체위에 상정해 표결에 붙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 전체위에서 김광동 위원장과 여당 추천 위원들이 경찰 사찰기록을 문제삼아 이들의 진실규명 여부를 쟁점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만덕 영천유족회장은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진실규명을 한다는 진실화해위가 군경에 의한 학살 희생자를 가해자로 모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만약 그런 황당무계하고 억울한 일이 벌어지면 유족회 차원에서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지난 8월18일 열린 제60차 전체위원회에서 ‘충남 태안 이원면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진실규명 보고서를 의결하면서도 진실규명 대상자 35명 중 17명에 ‘악질부역’ 등급에 해당하는 코드번호 1-7을 기재하기로 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1980년 태안을 관할했던 서산경찰서가 작성한 ‘신원기록심사보고’의 심사기준표를 인용한 것이다. 이에 관해 야당 추천 위원들이 반대하자 “신원기록심사 보고서는 진실 규명 대상자의 희생 시기 및 희생 이유를 규명하는 데 다소 한계가 있다”(8월29일 제61차 전체위 수정문안)는 주석을 달고 진실규명을 했다.

진도와 영천, 태안의 경찰 사찰기록물은 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들이 입수해 희생자 확인에 활용한 자료들이다. 이와 관련 이옥남 상임위원은 지난 8월29일 제61차 전체위에서 “(경찰 사찰기록에 나온) 부역혐의에 대해서는 신뢰성이 없고, 희생 사실만 신뢰성이 있냐. 왜 특정 부분만 받아들이냐”고 말했다. 야당 추천 이상희 위원이 “희생 이유 등은 자료의 한계가 있고 희생 사실을 규명하는 데서 중요한 자료”라는 취지로 부역등급 표기와 관련한 주석 문안을 제시하자 나온 말이다.

그러나 경찰 사찰자료에 기재된 부역 혐의와 희생 사실의 신뢰성은 동등하게 비교하기 어려워보인다. 먼저 경찰이 처형 또는 사살 등 희생 사실을 거짓으로 적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망신고에 따른 제적등본 변동이나 목격자, 유가족 등의 진술로 희생자의 사망 또는 실종 여부의 교차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천의 경우엔 1960년 4대국회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 희생자 자료와도 비교가 가능하다.

반면 서산·진도·영천경찰서 사찰기록에 등장하는 “악질부역”이나 “암살대원” “살인”등의 처형 또는 사살 이유는 아무런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문자료나 수사기록, 재판기록은 물론 단 한 줄의 부연설명도 없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의 한 조사관은 “민간인 희생사건의 두 가지 대전제는 민간인일 것, 적법절차 없이 희생됐을 것”이라며 “이걸 부정하기 위한 부역자 딱지 붙이기에서 구체적인 진술과 기록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게 핵심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전쟁기 부역혐의 사건은 1950년 인민군 점령기 직후와 1951년 1.4후퇴 직후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 발생했다. 이중 경남북과 충남북의 경우 경찰기록이 많은 편이라 향후 진실규명 과정에서 이를 근거로 부역 혐의 문제를 쟁점으로 계속 삼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북은 조사1국 3과, 충남북은 같은 국 4과 담당이다. 19일 소위에는 여야 추천 이옥남·김웅기(국민의힘), 이상희·오동석(더불어민주당) 위원과 조사 1~4과장, 담당 조사관들이 참석한다.

※‘부역자’는 통상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이들에게 협조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진실화해위에서 ‘부역 혐의자’는 즉결처분 당한 희생자를, ‘부역자’는 법원 재판을 통해 부역 혐의가 확정된 주민을 가리켜왔다. 부역자 처리지침을 만든다는 건 당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즉결처분 당한 ‘부역 혐의자’ 중 누가 ‘부역자’인지 진실화해위가 판정해 진실규명 여부부터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져 반발을 사왔다.

또한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전향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관변단체다. 군경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 이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9월19일 1소위에서 다뤄지는 영천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경우 부역혐의 희생이 아닌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희생자를 부역자로 판단하는 사례가 될지 주목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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