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고위공직자들이 잇따라 ‘이해충돌 우려가 있으니 보유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인사혁신처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10년 동안 11명의 공직자가 인사혁신처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냈고, 5명은 ‘시간끌기 소송’으로 백지신탁을 하지 않은 채 임기를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백지신탁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최근 10년 동안 공직자 직무관련성 심사를 한 5073건 중 889건(17%)은 직무관련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가운데 1.2%인 11명(건)은 결과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그중 절반가량인 5명(건)은 소송 진행 중에 임기가 끝나면서 직무변경으로 결국 소가 취소됐다. 이밖에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2건과 백지신탁해 소취하된 1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3건은 모두 직무관련성이 인정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인사혁신처의 주식 백지신탁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낸 박병근 국무총리 비서실장(왼쪽)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오른쪽). 한겨레 자료 사진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고위공직자가 3천만원을 초과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이를 금융기관에 맡겨(백지신탁) 60일 안에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주식 처분에 이의가 있으면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해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불복하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 불복 소송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모두 4건이 제기됐다. 최근 10년간 1년에 0∼1개 정도로 모두 11건에 불과했는데,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4건(36%)의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배우자의 서희건설 등 수십억원대 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올해 2월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도 지난해 12월 배우자가 보유한 한 바이오기업 비상장 주식 8억원어치를 처분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1심에서 패소했다.
인사혁신처는 개인정보 등의 이유로 백지신탁 없이 임기를 마친 5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송 시간 끌기로 백지신탁을 끝내 피한 채 임기를 마친 사실이 확인되면서 백지신탁 제도 자체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성만 의원은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주식 파킹 건에 이어 시간 끌기용 소송으로 백지신탁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게 실제 수치로 처음 확인됐다”며 “공직윤리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제도를 전면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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