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로 첫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비동의 강간죄’ 도입 문제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성폭력 근절에 앞장서야 하는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 자료를 보면, 김 후보자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성범죄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답변했다.
‘비동의 강간죄’란 상대방의 동의가 없거나 의사에 반해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력 범죄로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작은 유형력 행사에도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에 처할 수 있다는 하급심 판례가 등장하고 있지만,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물리적인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강간죄를 인정하는 대법원 ‘최협의설’ 판례는 여전히 폐기되지 않고 있다.
폭행·협박을 수반하지 않은 성폭력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가부 공식 통계에서도 확인됐다. 여가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22 성폭력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가해자의 속임수’로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응답이 34.9%로 가장 많았다. 성추행 피해 당시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고 답한 여성 비율은 각각 2.7%, 7.1%에 불과했다. 강간(강간미수 포함) 피해도 강요에 의한 피해가 41.1%로 폭행(23.0%)이나 협박(30.1%)에 따른 피해보다 더 많았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과 2018년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여가부는 올해 1월 제3차(2023~2027년)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가, 법무부 반대로 철회했다.
양경숙 의원은 “범부처 성평등 정책을 총괄·조정하고 성폭력 근절 책무를 이행해야 하는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소극적인 김 후보자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미 오래전부터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김 후보자는 여성대상폭력 방지 정책 주무장관 후보자로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김 후보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또는 평등법)’ 제정에 관해서도 “국민적 합의를 위한 의견 수렴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이성 간 혼인 중심의 가족제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생활동반자법(안)’ 제정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사실상 제정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국회에 전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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