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다.’
그녀를 떠올리면 언제나 자동으로 이 네 글자가 따라 떠올랐다. 꼭 맞는 수식어처럼, 오래전부터 달고 다닌 별명처럼 내가 만난 모든 순간 그녀는 대단했다. 대단하지 않은 그녀를 떠올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의 첫번째 사기는 비교적 평범한 스타일이었다. 오래 혼자 살아온 외로운 남자에게 결혼할 것처럼 접근한 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한번은 친정 오빠가 누구를 때려 합의금이 필요하고, 또 한번은 친정엄마 수술비가 급히 필요하다는 식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수십억원 되는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당장 현금화가 되지 않아 푼돈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부동산 부자인 엄마가 없고, 친정 오빠라는 이는 그녀의 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남편이었다는 이야기. 그 와중에 결혼을 약속한 이가 그 남자 외에도 여러 남자 더 있었다는 이야기. 여기까지만 보자면 흔한 혼인 빙자 사기범이다.
그녀의 진정 대단한 면모는 사기 2라운드에서 드러난다. 속았다는 것을 안 남자의 고소로 그녀는 결국 교도소에 갔다. 그런데 수감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누구의 아이인지는 여기서 따지지 말자. 출산이 임박하자 형 집행이 정지되고 그녀는 잠시 출산을 위해 석방된다. 그즈음 남자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전화 속 목소리는 자신을 그녀의 어머니라고 소개한다. 애까지 낳은 딸아이를 다시 감옥에 가게 둘 수는 없으니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넘겨주고 합의를 좀 보려고 한다고 전화 속 여성은 말한다. 그런데 어쩐지 남자는 부동산에 약간의 세금 체납이 있어서 이걸 납부해야 땅을 넘길 수 있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믿고 만다. 체납된 세금 압류를 푸는 비용과 등기 이전 비용과 새로 취득하는 토지에 대한 취득세까지 갖가지 명목으로 수천만원이 넘어간 뒤 장모가 될 뻔한 여성의 연락은 두절되고, 그녀는 아이를 낳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간다. 남자는 뒤늦게야 전화 속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녀의 목소리와 같았음을 깨닫는다.
출산을 위한 형 집행 정지 기간이라는 불과 몇주 동안 과거에 사기 친 남자를 다시 사기 친 여자, 그 와중에 아이도 낳고 유유히 교도소로 다시 복귀한 여자. 사건 기록을 덮으며 나는 조그맣게 “우와~ 대단하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가 언제부터 그런 2차 범행을 계획했는지 모르지만 그 기획력과 실행력이 흔한 사기범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이미 들통난 사기지만 포기하지 않고 불씨를 살려 다시 불 지필 수 있다고 판단한 뒤, 출산을 위한 형 집행 정지라는 극한의 상황을 이용하여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짜내고 실행한 것이었다.
1차 사기에 따른 형을 다 살고 출소한 그녀는 2차 사기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거대한 숨소리’와 함께 검사실로 왔다. 1층에서부터 3층까지 그녀가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그 숨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는데, 무언가 한 사람이 올라온다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커다란 체구의 여성이 걸음마를 막 뗀 듯한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검사실에 들어섰다. 기록을 보며 상상하던 모습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라 약간 놀라다가 눈길이 그녀의 커다란 배에 이른다. “아, 제가 임신 중이거든요. 쌍둥이래요.”
그녀의 커다란 배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숨소리가 모두 수긍된다. 검사실의 우리는 모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사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미 완전히 이기기엔 어려운 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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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자처한 여자에 대해서도, 등기를 넘겨준다는 부동산에 대해서도, 남자가 돈을 송금한 계좌(전남편의 누나 명의)에 대해서도….
“저는 저 아이를 낳고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을 뿐이에요. 아이가 장애가 좀 있어요.” 여자는 놀고 있던 아이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긴다. 기다렸다는 듯 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달랠 생각이 없고, 조사는 중단된다.
그 뒤로도 조사는 내내 순조롭지 않았다. 조사가 불리해질 만하면 그녀는 갑자기 배를 움켜잡으며 숨소리를 거칠게 내뱉었다. ‘갑자기? 이 타이밍에?’ 싶었지만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거대한 배를 보자면 저것이 쇼일 확률이 99%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병원에 잠시 들렀다 오겠다며 나간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조금만 늦게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당분간 절대 안정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전화로 소식을 전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쾌활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우리대로 계좌 추적 등으로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으나, 그사이 그녀의 배도 점점 불러 어느새 출산이 임박해 있었다.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배 속 아이만은 실존하는 존재였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분노의 구속영장을 얼마간 더 저장해둬야 했다.
그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더니 그녀가 출산을 한 것은 맞단다. ‘그래 아무리 숨만 쉬어도 거짓말인 그녀라 하더라도 그 커다란 배가 거짓일 수는 없지’ 하고 전화를 끊으려다가 문득 물었다. “쌍둥이인가요?” “아뇨, 하나예요. 저희 병원에 쌍둥이는 없어요.” 이건 도대체 뭘까? 쌍둥이든 아니든 사건에서 달라질 것이 없는데 그녀는 왜 굳이 거짓말을 한 걸까. 아기가 하나인 이유를 묻자 그녀는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준비된 듯 말했다. “쌍둥이였는데, 한 아이는 유산되었어요.”
확인되지 않은 괴벨스의 어록 중에 “100% 거짓보다 1% 진실이 섞여 있는 쪽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말이 있단다. 그런 맥락에서인지 그녀는 100% 진실일 수 있는 영역에도 습관적으로 거짓을 섞었다. 그리하여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진실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일 자체가 허망한 것이 되기까지 그녀는 삶의 전방위에서 끊임없이 거짓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사기꾼으로서 그녀의 위대함은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산후조리가 끝날 즈음 드디어 그녀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 남자의 합의서가 제출되었다. 돈은 받고 합의하시는 거냐고 물었더니 돈은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으나 여자의 남편이라는 자가 보증을 섰다고 했다. 그걸 믿으셔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남자는 확고했다. 자기가 두번 속지 세번 속겠냐고 큰소리를 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하여 여자의 구속영장은 기각되었다. 글쎄, 이 정도라면 여자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남자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기각된 영장을 받아 들고 나는 다시 한번 “우와~ 대단하군” 하고 작게 숨을 내쉴 뿐이었다.
대구지검 상주지청장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