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 지난 9일 오후 이곳을 찾은 학생과 학부모가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숨진 대전의 초등학교 교사 ㄱ씨에 대해 2019년 ‘정서 학대’ 의견을 낸 세이브더칠드런이 며칠째 뭇매를 맞고 있다. 당시 경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의 의견이 수사기관의 아동학대 판단에 주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당한 교육활동’이라는 교실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일선 교사들의 반발이 크다. 당정이 교사의 아동학대 신고 사건에 교육감 의견을 반영하기로 하면서 관점의 균형추를 맞출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14일 대전교사노조와 세이브더칠드런 쪽 설명을 종합하면, 2019년 11월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보전 자격으로 ㄱ씨가 학부모한테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사건과 관련해 ‘정서학대’로 판단하고, 아동에게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업무수행 지침을 바탕으로 현장 조사한 결과를 넘긴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지만, 이후로도 ㄱ씨는 학부모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떤 기준으로 교사의 정서학대를 판단했을까.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받은 ‘아동보호 전문기관 업무수행 지침(2019)’을 보면, 정서학대는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정신적 폭력 또는 가혹행위”로 폭언과 위협, 잠을 재우지 않는 행위 등 19가지 행위 예시를 들고 있다.
이 가운데 학교에서 일어날 법한 사례로는 ‘원망적, 거부적, 적대적 또는 경멸적인 언어폭력’, ‘특정 아동을 차별하는 행위’, ‘아동을 오랜 시간 벌을 세우고 방치하는 행위’ 등이 있다.
이 사건 관련 대전지검의 불기소결정서를 살펴보면, ㄱ씨가 담당하던 반의 한 학생이 시험 시간에 뒤를 돌아봐서 공개적으로 “넌 0점이야”라고 말하고, 급식실에서 해당 학생이 다른 학생의 배를 때려 공개적으로 큰소리로 혼내는 등의 생활지도 때문에 학부모한테 민원과 고소가 들어왔고, 세이브더칠드런은 교사의 발언 등을 토대로 정서 학대라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과 비교하면 현재 아동학대 의심 신고 절차엔 다소 변화가 생겼지만, 경찰이 아동학대 의심 사건을 판단할 때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견과 더불어 아보전의 의견을 전문 의견으로 의존하는 것은 여전하다. 대전 사건 이후인 2020년 10월부터는 아동학대 대응과 관련한 국가 책임이 커지면서 기존 민간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수행하던 아동학대 관련 현장 조사 등을 지자체 소속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수행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후 절차인 사례 조사를 중심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일반공무원과 순환보직으로 운영해 평균 근속연수가 매우 짧아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구조라, 여전히 아보전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일선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장은 “폭행이 있는 아동학대는 판단이 어렵지 않은데, 판단이 어려운 ‘정서 학대’는 전문 기관(아보전) 의견에 의존한다”며 “전문 기관의 의견을 거스르는 게 오히려 부담이 되지만, 확실히 경찰보다 아동학대 범위를 넓게 보는 경향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현행 매뉴얼 기반 판단에만 의존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도 “교실에서 학생들을 다루기 어려워 교사가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낼 수 있는데 이를 두고 학생들이 ‘두려웠다, 위축됐다’고 하면 정서학대가 될 수 있다”며 “아이들의 진술만 듣게 돼 자칫 억울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데 진단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말했다.
김희진 변호사(전 국제아동인권센터)도 “정서 학대 여부는 현장에서 진행하는 일회성 조사만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운데, 이는 아이의 특성이나 아이의 기존 관계 및 주변환경 등 여러가지 맥락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지금 제공되는 매뉴얼 지침은 훈련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현장에서 그 업무를 수행할 때 충분히 참고할만큼 안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장 상황을 고려해 아동학대 판단과 관련해 정부는 본격적으로 관련 절차 보완에 나섰다. 교육부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안전원에서 아동학대 수사·조사 개선을 위한 관계부처 공동전담팀(TF) 1차 회의를 열고 관계 부처와 논의했다. 교육부는 교사 대상 아동학대 신고가 있을 경우 지역교육청과 사안을 공유하고, 신고된 내용이 정당한 교육활동인지 확인해 교육감이 의견을 제출하는 시스템을 이달 안에 갖추도록 할 계획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쪽은 “현장에서의 매뉴얼상 정서 학대의 기준을 토대로 현실적으로 판단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는건 사실”이라며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정부) 부처 간의 논의를 통해 아동·학생과 교사 모두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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