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9일 오후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왼쪽), 유가려 씨가 자신들에게 가혹행위와 허위진술을 강요한 혐의를 받는 국정원 직원들의 1심 속행 공판에 앞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를 폭행하고 협박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낸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10년 전 사건에 대한 유가려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유씨 쪽은 “미시적 차이만 부각한 판결”이라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승호 판사는 9일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위반과 위증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 ㄱ씨와 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 2012년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지금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감금된 유씨를 폭행하고 협박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받아낸 혐의로 2020년 재판에 넘겨졌다. 2013년 6월 유우성씨 재판에서 “유가려를 폭행한 적 없다”고 위증한 혐의도 받았다.
앞서 유씨는 두 차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구체적 피해 내용을 진술한 바 있다. ㄱ씨와 ㄴ씨가 약 한 달 간 손과 발, 물병 등으로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머리를 벽에 찧었으며 전기고문실에 끌고 간다고 협박했다는 내용이었다. 유씨는 이들이 ‘회령 화교 유가리’라고 쓴 종이를 자신의 배와 등에 붙이고 운동장으로 끌고가 “탈북자로 가장해 들어온 나쁜× 구경하세요”라며 망신을 줬다고도 했다.
법원은 유씨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씨 진술이 몇 차례 번복되고,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증인의 진술과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센터에 있던 탈북자 ㄷ씨는 2013년 유우성씨 형사사건 수사 때 “유가려씨를 (센터에서) 처음 보았을 때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지만 상처가 있진 않았다. 국정원 직원들이 유가려씨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유씨 기억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판사는 2013년 유우성씨 형사사건 수사 때와 2020년 국정원 직권남용 검찰 수사 때 유씨 진술이 번복된 점에 주목했다. 폭행 당시 ‘60대 남자 조사관’이 동석했는지와 자해 도구가 ‘비타500’인지, ‘유리병’인지 등 진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유씨를 대리하는 양승봉 변호사는 “법원은 유가려씨가 국정원에 불법 구금되어 허위 진술을 강요당한 실체적 진실 파악에는 관심이 없고 미시적인 차이점만 부각했다. 항소심에서 꼭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유씨의 오빠 유우성씨는 “10년 동안 사람의 기억이 똑같을 수는 없는데 사소한 말장난으로 무죄를 선고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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