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6일 전북 부안군 야영장에서 철수하기 위해 짐을 나르고 있다. 연합뉴스
‘선 철수 발표-후 대책 마련’.
7일 정부가 발표한 태풍 ‘카눈’ 북상에 따른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의 비상 대피 대책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정부는 이날 잼버리 참가자 3만7천명을 수용할 숙소도 확정 짓지 못한 상태에서 참가자 전원을 조기 철수시키겠다고 발표부터 했다. 12일까지 남은 4박5일 동안의 활동 일정도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잼버리 개최 직전까지 ‘위기상황 대응 계획’을 마련했다고 자신하던 정부는 온데간데없고, 컨트롤타워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며 폭염과 태풍 앞에 연타로 흔들리면서 임시방편만 쏟아내는 형국이다. 조기 철수 결정으로 사실상 잼버리 행사가 조기 폐막하게 된 셈이라, ‘부실 준비’ 문제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조기 철수 결정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내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특히 잼버리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를 포함해 조직위원회의 존재는 아예 사라졌다.
이미 지난 주말부터 태풍 카눈이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어 한반도가 영향권에 들 것이란 예보가 이어졌지만, 잼버리 조직위는 ‘자연재난 위기대응 행동 매뉴얼’이 마련돼 있다고 강조할 뿐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이날 오후 누리집을 통해 “오늘 오전 대한민국 정부가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 전원 조기 철수 계획을 연맹 쪽에 전달했다”고 밝힌 직후에도 조직위 쪽에서는 “(스카우트연맹이 퇴영 여부를 두고)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조직위 쪽이 조기 퇴영과 관련된 브리핑 일정도 고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외교부 등을 통해 브리핑 일정을 포함한 수도권 대피 계획 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잼버리 대회가 열리는 부안군에서 조기 철수를 결정한 7일, 독일 대원들이 부스를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후 4시30분이 돼서야 이뤄진 브리핑에서 밝힌 정부의 대책은 ‘잼버리 참가자들을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으로 순차적으로 대피시킨다’는 게 전부다. 그나마도 “현재 수도권 내 (이용 가능한) 숙소를 확인하고 있다”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고만 했다.
잼버리 참가자들을 수용할 숙소도 정해지지 않은데다, 이들을 여러 곳에 분산하다 보니 관리 및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숙소를 구하면서 숙식·의료·안전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이러한 수도권 비상 대피 계획은 지난달 조직위가 마련한 자연재난 위기대응 행동 매뉴얼에는 없던, 전혀 새로운 내용이었다.
조직위는 이 매뉴얼에서 태풍·호우·강풍, 폭염 등 재난 유형별로 기상 특보에 따라 위기 단계를 3단계(주의·경계·심각)로 구분하고,
태풍이 ‘심각’ 단계인 경우에는 미리 지정한 근거리 대피지역 4개 시군(군산·김제·부안·정읍) 실내 구호소 204곳과 원거리 대피지역 4개 시군(고창·완주·익산·전주) 실내 구호소 138곳에 참가 인원들을 대피시킨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날 발표로 사전에 마련한 대책은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전에 없던 수도권 비상 대피 계획이 마련된 건, 전날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전날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 침수에 대비해 숙소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잼버리 대회 직전 전북 부안군에 시간당 32㎜의 폭우가 쏟아져 야영장이 물에 잠긴 바 있는데,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최대 일강수량이 100㎜를 초과하고 거센 바람까지 불면 야영이 불가능하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기상 악화는 정부의 대응이 필요한 부분이며,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세계스카우트연맹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같은 입장을 표해 이동 가능한 숙소를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어느 일방의 요청이 있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양쪽의 의견 일치가 이뤄졌다는 취지다.
5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영지 내에 버스들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조직위 안에선 정부의 이런 급작스러운 결정에 대한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스카우트연맹 기획조정본부 관계자는 “며칠 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케이팝 공연은 상암이나 전주로 옮긴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등 잼버리를 대통령 지시를 받아 각 장관이 좌지우지하니까 연맹과 갈등이 생기고 있다”며 “이번 철수 결정도 조직위하고는 전혀 상의하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크다”고 말했다.
조기 철수를 발표하는 과정에서마저, 정부 각 부처가 손발이 맞지 않고 갈등하는 모습만 노출하고 있는 양상이다. ‘위생 불량’ 화장실과 ‘폭염’ 속 온열질환자 속출에 대한 대응 미비 등 부실한 준비로 개막 첫날부터 국제적 논란이 된 잼버리가 사실상 조기에 막을 내리게 되면서 향후, 책임을 둘러싼 논란도 가열될 전망이다.
오세진
5sjin@hani.co.kr, 채윤태
chai@hani.co.kr,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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