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 소기점도와 소악도 사이 갯벌. 한국전쟁기인 1950년 10월 국군에 의한 수복을 전후로 증도면 병풍리에선 적대세력과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1950년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서 발생한 군경과 적대세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각각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군경에 의한 희생 사건에 대해선 국가의 사과를,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에 대해서는 희생자와 유족 피해 회복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조처를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4일 제58차 전체위원회에서 ‘증도면 병풍리 희생 사건’ 2건에 대해 이처럼 결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서 발생한 두 사건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뒤 국군이 지역을 수복하기 전후의 일이다.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은 1950년 10월 증도면 병풍리에 거주하던 주민 24명이 인민군 점령기 부역자의 가족이거나 부역 혐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증도면 병풍리, 등선리, 방축리 등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1950년 10월7일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 수복을 위해 소악도로 상륙한 국군은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를 거쳐 병풍리로 들어와 인민군 점령기 부역자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부역자 가족이거나 부역혐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민간인들을 소기점도 노구 인근, 장기점, 건너메잔등에서 총살했다. 10월21일에는 경찰이 좌익혐의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을 증도면 등선리에서 총살했고, 같은 이유로 1950년 10월31일 병풍리 장바탕, 증도면 방축리 등에서도 총살이 이뤄졌다.
1950년 10월2일 목포 상륙을 시작으로 신안 도서 지역에서 국군의 수복 작전이 진행됐다. 임자면이 10월19일 수복된 것에 비해 증도면 병풍리는 10월 7일 수복이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전쟁 중이라도 국가기관인 경찰이 비무장 민간인을 법적 근거와 사법 절차 없이 살해한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희생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 및 명예 회복 조치, 위령사업 지원, 평화·인권 교육의 강화 등을 통해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은 1950년 10월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 거주하던 주민 15명이 공무원, 우익인사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지방 좌익 등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조사과정에서 6·25사변 피살자명부, 전국순국반공청년운동자명부, 반공희생자명단 등의 기록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인민군 점령기에 병풍리는 면 소재지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 인민군에 의한 희생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퇴각기인 1950년 10월 초 지도면(현 지도읍)에서 들어온 좌익들에 의해 공무원, 우익인사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주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했다. 병풍리에서 발생한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의 특징은 국군이 병풍리를 수복하기 직전인 1950년 10월6일에 발생한 점이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희생자와 유족의 피해 회복 조치, 추모사업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등 정정, 평화·인권 교육 강화 등을 통해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