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1일 충주시 호암동 749-4 건국대 실습농장 인근에서 열린 충주 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잔을 올리는 의식을 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사회부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맡은 지 두 달 조금 넘는다. 첫 날이 4월10일이었다. 진실화해위 홍보팀으로부터 보도자료가 왔다. 다음날인 11일 충북 충주에서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가 열린다고 했다. 개토제는 기공식에 해당하는 행사로 유해발굴 공개나 봉안식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한데 김광동 위원장이 온다고 했다. 얼핏 ‘그가 이 문제에 그렇게 진심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현장에 갔다.
개토제는 4월11일 오후2시부터 충주시 호암동 749-4 건국대 실습농장 인근에서 열렸다. 전국유족회 회원들이 김 위원장을 반갑게 맞았다. 개토제 뒤에는 유족회 회원들과 만나 “민간인 학살 희생자 진실규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1기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분들은 개별적으로 법원에서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해 번거로운 점이 많았는데 2기 진실화해위에서는 별도 소송 절차 없이 배·보상을 받도록 법 개정을 하겠다”는 말도 했다. 유족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계속 이어갔다.
6월9일 아침 김 위원장이 서울 영락교회에서 한 발언을 보면, 충주에서 만난 그 김 위원장이 맞나 싶다. 압권은 다음과 같다. “침략자에 맞서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서는 1인당 1억3200만 원의 보상을 해 주고 있습니다. (중략) 지구상에서 이런 나라가 있어 본 예가 없습니다.”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관해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만들기 위해 초래시킨 피해”라고 정당화했다.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최대치 1억3200만원이라는 보상금액을 여러 차례 거론하며 개탄했다.
김 위원장은 9일 아침 7시30분부터 시작한 본 강연 때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6.25전쟁: 한국기독교의 수난과 화해’라는 제목의, 당일 행사 자료집에도 게재된 내용이었다. 강연이 끝나자 노트북을 꺼내 강연 내용을 받아치던 기자들이 나갔다. 뒤이어 아신대 정종기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질의 응답 시간이었다. 기자들이 다 갔다고 판단했는지, 김 위원장은 이때부터 흥분한 목소리로 본심을 꺼냈다.
6월9일 오전 7시 반 서울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 503호에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주최로 열린 조찬기도회 월례발표회에서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6·25전쟁 한국기독교의 수난과 화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고 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극우적 발언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던 김광동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가장 고약하다. 2기 진실화해위에 접수된 신청자 2만2266명(2만92건)중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된 이는 1만256명(9957건)인데, 이들이 진실규명을 해달라는 희생자들의 죽음을 정당화하고 모욕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을 대면 조사하는 진실화해위 조사관들도 위축을 느낀다. 5월30일 오후 월례회의에서 조사1국의 4과장이 했다는 “6.25와 같은 전쟁 상황이었다면 직원이 무엇을 들고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는 말은 조사1·2국의 조사관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총으로 이쪽을 겨눌 것 같다는 뜻을 내포한 이 말에 대해 김 위원장이 바로 공감해주자 충격은 두 배가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망언의 제도화다. 이 고약한 말들이 관련 사건의 조사와 진실규명 과정에 스며들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들에 관한 조사와 진실규명을 할 때 가해집단이 누구냐에 따라, 즉 인민군이냐 대한민국 군경이냐에 따라 편을 갈라 차별하고 그 차이와 불균형을 계속 키울 지 모른다. 또 어떤 기상천외한 조치가 등장할지 궁금하다.
다시 충주로 돌아가본다. 충주 개토제 현장에서 김 위원장의 고향이 충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중요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관련 행사에서 김 위원장 얼굴은 본 적이 없다. 5월13일 아산시청과 세종 추모의 집에서 열린 아산지역 발굴 유해 봉안식에는 사무처장을 보냈다. 5월30일 충남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언론공개 현장에는 대외협력관을 보냈다. 충주는 본인의 고향이라서 내려왔던 걸까.
김 위원장은 요새 부쩍 교계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 8일 종교인 단체 방문을 받았고, 개신교 대형교회의 언론사 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9일 아침 7시에 영락교회를 갔다. 김 위원장은 개신교인으로 알려졌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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