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오른쪽),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15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직권남용이라는 형벌 규정의 처벌 범위는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을 것인가. 15일 ‘별장 성폭력 사건’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원 검사 등의 혐의를 대부분 무죄로 본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에 대한 대답처럼 들린다.
2019년 3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하고 나흘 뒤인 22일 밤, 김 전 차관이 인천국제공항에서 타이행 비행기표를 발권했다는 소식이 법무부로 알려졌다. 별장 성폭력 의혹 등이 처음 불거진 뒤 6년여 만에 다시 수사망이 좁혀져오자, 국외 도피를 시도한 것이다. 부랴부랴 그의 출국을 막으려던 검찰은 출국금지요청서에 과거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번호를 기재했다. 소속 검사장의 직인도 생략된 채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는 이날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이 검사 등의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조처가 “법률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그릇된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다만 당시 이미 범죄 피의자 신분으로 볼 수 있었던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아야 했던 사정을 고려했을 때, 이는 검사와 법무부 당국의 “정당한 업무”로 봐야 한다며 대부분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먼저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와 관련된 일련의 행위가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상당성을 갖춘 행위라고 판단했다. 김 전 차관에 대한 재수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수사 대상자가 될 것이 확실한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를 저지한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김 전 차관의 출국을 그대로 용인했을 경우 재수사가 난항에 빠져 검찰 과거사에 대한 국민적 의혹 해소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그 필요성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맥락에서 차 전 연구위원이 출입국 관련 ‘알림등록 시스템’에 김 전 차관에 대한 알림을 등록하고, 출국 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한 혐의도 “출입국 본부의 소관 업무 수행을 위한 것”이라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가 법률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그릇된 선택’이라는 점은 적시했다. 긴급 출국금지는 범죄 피의자로서 ‘사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그만큼의 혐의를 인정할 정도로 증거 등이 뒷받침되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긴급 출국금지 과정에 이 검사 등에게 직권남용의 고의를 인정할 순 없다고 봤다.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가 법률상 요건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이는 상당 기간 심리와 법률 검토 끝에 내려진 사후적 판단일 뿐,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직권남용’으로 인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이에 재판부는 “김 전 차관 출국 시도를 저지한 것은 주요 사건 당사자의 해외 도피를 차단하기 위함이었을 뿐이고, 개인적인 이익이나 불법 목적의 실현을 위한 행위라고 볼 증거가 없다”며 “결과적으로 이 검사 등에게는 직권을 남용한다는 고의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징계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형사처벌을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판단이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 내부에서 편이 갈라진 정치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 이규원 검사의 행위가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와 별개로 법원은 법리적인 관점에서 직권남용 혐의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며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항소심에서는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긴급 출국금지를 ‘위법’하다고 보고, 직권남용죄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모호한 판결”이라며 “피고인들에게 악의가 없어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항소심에서도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불법 출금과 수사 무마 관련 법원의 1심 판결은 증거관계와 법리에 비추어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항소를 통해 반드시 시정하겠다”고 반발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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