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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술직 꿈 안고 취업, 무너진 기대…68% “그만두고 싶다”

등록 2023-01-12 05:00수정 2023-01-13 17:14

[2023, 공장을 떠나다] ② 특성화고 졸업 노동자들 설문·분석
“미래를 위해 겪는 과정” 90%
견디는 듯하지만 퇴사 뜻 높아
연장근무 등 장시간 노동 매여
이직 준비 어려운 ‘악순환’ 굴레
청년노동자가 2일 저녁 경기 안산시 안산스마트허브전망대에서 자신의 일터인 반월국가산업단지을 내려다 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청년노동자가 2일 저녁 경기 안산시 안산스마트허브전망대에서 자신의 일터인 반월국가산업단지을 내려다 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023년, 예순살 윤정민은 공장을 떠난다. 스물한살 최예린은 공장을 떠났다. 떠나며 질문을 남겼다. 왜 한국은 소수의 인재만이 아닌, 다수 노동자가 주인공인 성공을 꿈꾸지 못하는가. <한겨레>는 세 차례에 걸쳐 평범한 노동자의 숙련과 가치를 놓친 혁신과 경제 성장이 개인과 한국 사회에 남긴 불안과 경고를 전한다.

“전공이랑 맞지 않는 일을 해서 힘들거나 야근수당 못 받는 건 기본 베이스로 깔리고요, 거기에 추가로 (개인별 어려움이) 있어요.”

최예린은 또래 친구들의 회사 생활을 이렇게 설명했다. 청년들이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한 일반고 진학 대신 특성화고를 선택한 이유는 또래들보다 빨리 취업하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력을 쌓고 높은 연봉을 받겠다는 게 목표지만, 현실은 이들의 바람과는 달랐다.

<한겨레>는 안산·시흥 지역 특성화고 졸업생 모임 ‘마니또’가 최근 3년간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 노동자 98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3건을 살펴봤다. 2020년 졸업생(42명)과 2021년 졸업생(43명)이 각각 12월에, 2022년 졸업생(13명)이 10월에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추렸다. 또 2022년 11월 마니또와 함께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자(36명)들을 대상으로 추가 설문조사를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설문조사에서 종욱·예린과 같은 청년 노동자들의 속사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재 업무를 ‘그만두고 싶냐’는 질문에 응답자 68%가 ‘그렇다’고 답했다. 현재 업무가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질문에는 42%가 ‘아니다’를 택했다. 반면, 현재 업무가 ‘미래를 위해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물음에는 90%가 ‘그렇다’고 했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현재 업무가) 미래를 위해 겪는 과정이라고 ‘견디는 듯’하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응답이 높은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며 “(현 직장이) 적성·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아 버티면서 기회가 오면 언제든 이직하고자 하는 ‘현재성’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일터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을 묻는 문항(복수 응답)에선 ‘맡겨진 업무와 나의 적성’(32%)이란 답이 가장 많았다. 월급여(26%), 노동시간(26%), 휴일근로(16%) 등이 뒤를 이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현재 일자리를 적성, 직무 때문에 선택했더라도 임금, 노동조건 등이 더 나은 일터로 이동하는 현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현 직장을 거쳐 가는 정거장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놓고 작은 사업장의 ‘인력 운용 방식’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설문조사를 진행해온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최한솔 노무사는 “큰 회사는 청년들을 채용하지 않고 사람 수를 줄이려 하고, 소규모 사업장은 청년들을 저임금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직업계고를 졸업한 고용보험 가입자 중 70%(1만5819명)가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2022년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 통계 조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이 이직을 원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희망 직장에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질문하자 △‘대학 진학’(33%) △‘취업 정보’(25%) △‘취업 준비 시간’(22%) 등 3개 항목에 80%가 몰렸다. 그러나 다수는 연장근로 탓에 구직 활동에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앞서 마니또가 한 조사에서 응답자 67%가 일주일에 최소 한번 이상 연장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하고 있다’고 답한 비중도 17%나 됐다.

연장근무는 불평등을 낳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진 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격차가 교육 수준 및 학력과 맞물려, 노동시간을 결정하는 경향이 짙다”며 “특성화고 졸업 이후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라는 ‘저수지 늪’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각자도생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현상이 보인다”고 짚었다. 최한솔 노무사는 “임금이 적으니 더 오래 일하는 구조이고, 더 오래 일할수록 시간이 없어서 (구직) 정보를 얻기 어렵다. 대학에 진학하려 해도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차별이 공고해지고, 그들은 (저임금) 굴레에 갇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청 노동시장만 커지는 구조속

청년노동자 숙련 키우기는 요원

2023년 청년 노동자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하는지는 한국 산업과 사회적 안정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2000년 한 해 64만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2021년 26만명까지 3분의 1로 줄었다. 2020년부터 15~64살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현실화됐다. 그만큼 일터에 새로 진입하는 젊은 노동자 한 사람이 산업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커질 것이다.

청년 노동자 대부분은 불안정 저숙련 노동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업종별로 보면, 음식점·숙박업, 도소매업, 보건업, 사회복지 서비스업에서 청년 노동자의 약 33.8%(218만6천명, 2022년 11월까지 월평균)가 일한다. 이들 업종의 중위 임금은 연 2천만~3천만원 수준이다.(2022년 6월 기준 사업체 특성별 임금 분포 현황) 제조업에서도 16.9%(109만명)의 청년이 일하는데, 이 가운데 75%는 중소 규모(300인 미만) 사업장에 속해 있다. 제조업 대규모 사업장(300인 이상) 대비 중소 규모 사업장의 임금 수준은 52%(2021년 기준)에 그친다. 청년이 몰려 있는 작은 사업장과 서비스 업종은 임금뿐만 아니라 사회보험 가입률, 노조 가입률, 상여금·퇴직금 여부 등으로 측정하는 전반적인 안정성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 낮은 임금과 불안정성은 당장의 어려움보다 ‘숙련을 향상시킬 가능성’과 관련해 한층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소득이 낮고 종사상 지위가 불안정할 경우 저숙련 직업군에 장기간 머물러, ‘불안정 노동의 회전문’을 돌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으로 필요한 숙련의 내용이 복잡해지고 양극화하며, 시간·부모의 지원 등에 따른 청년 사이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기업이 청년 노동자의 숙련을 키워줄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인 것을 고려하면, 산업의 불평등 구조를 함께 살펴볼 필요도 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 정규직은 정년과 자동화로 사라져 가기 때문에 하청·중소 기업 등 2차 노동시장이 더 넓어지고 있지만, 이들 기업은 원·하청 구조 속에 성장이 정체돼 노동자의 숙련을 키우기 위한 비전을 가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외국인이나 고령층을 통해 중소기업의 노동력 부족을 잠시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일자리도 성장과 노동자 숙련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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