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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장은 돌지만, ‘내일’은 없다

등록 2023-01-17 05:00수정 2023-01-17 20:15

[2023, 공장을 떠나다] ③-1 정석철의 다시 만난 공장
지난 이야기
지난 1986년부터 에스엔티(SNT)중공업을 다니고 2022년 12월 31일 정년퇴직을 한 정석철씨가 29일 낮 경남 창원시 에스엔티(SNT)중공업에서 재직기념패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986년부터 에스엔티(SNT)중공업을 다니고 2022년 12월 31일 정년퇴직을 한 정석철씨가 29일 낮 경남 창원시 에스엔티(SNT)중공업에서 재직기념패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이야기

경남 창원 SNT중공업에서 정년을 앞둔 베이비부머 노동자 윤정민과 그의 동료들은 30년째 정규직 생산 직원을 뽑지 않는 회사에 맞서 “청년을 고용하라”고 마지막 투쟁을 벌였다. 마지막 투쟁에 나선 이들의 평균 나이는 57살이다. 아직 청년 노동자는 채용되지 않았으며, 1962년생 노동 조합원 23명은 지난해 말 어김 없이 정년을 맞았다.

☞고됐고 빛났던 나의 공장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일터가 되었다”

“내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울컥하데예.” 경남 창원 에스엔티(SNT)중공업 생산직 노동자 정석철(61)도 정년을 맞았다. 2022년 12월27일, 청년이 없는 공장에서 그나마 정년을 앞둔 희끗희끗한 동료들끼리 노동조합 사무실에 달아놓은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풍선이 웃기고 살가워, 슬펐다. 동료들을 한번씩 꼭 끌어안고, 정석철은 공장을 떠났다. 1986년 8월로부터 36년4개월. 그가 공장에 머문 시간은 한국 산업이 중진국 수준을 넘어 선진국에 이른 시간과 일치한다. 대공장·정규직 노동의 끝에 만난 2023년의 공장과 자신의 모습을 정석철은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첫번째 현재: 결국은 하청노동자

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끝, 정석철에게 남은 것이라면 평범한 대한민국 예순살의 사정이다. 아들은 대학교 3학년인데, “취업한다 해도 비정규직 될 것 같아가” 셋방 얻을 돈이라도 마련해 줘야 한다. 외환위기와 이후 잦은 휴업으로 체불되거나 삭감되는 임금을 대신해서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아 퇴직금은 없다. 세전 4천만~5천만원 정도 되는 연봉은 생활비로도 빠듯했다. 개인연금은 못 들고 실비보험·암보험 정도 들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국민연금은 예순셋부터 받을 수 있는데 수령 액수가 변변치 않다. 최대한 늦은 나이부터 받을 계획이다. 그리하여 결론 또한 평범한 예순살에 이른다. “최소한 예순다섯까지는 일해야 합니더. 하청 공장 가면 됩니다. 힘들고 최저임금 받지요. 순 그런 일자리라 청년들이 안 오니까 자리가 좀 있다 카데요.” 그 또한 결국 하청노동자가 된다.

베이비부머의 완벽할 수 없는 정년, 외주화로 낮아진 공장 노동자의 가치, 그런 공장을 찾지 않는 청년이 어우러져 공장은 자연스럽게 고령의 하청노동자와 비정규직이 메우는 추세다. 생산직인 기능·기계 조작 종사자 가운데 55살 이상 노동자 비중은 2013년 22%(110만7천명)에서 지난해 36%(200만3천명, 경제활동인구조사)까지 늘어났다. 이선임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 부지부장은 “정년퇴직자가 10명 있으면 청년 정규직은 거의 뽑지 않고, 정년 이후 노동자들이 빈자리를 채운다”며 “정년 이후에는 하청업체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거나 ‘소사장’ 형태로 원래 있던 공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고, 노사 협상이 잘된 큰 공장들에서는 시니어 계약직으로 일을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두번째 현재: 사라지는 손의 가치

하청노동자로 만날 공장의 모습을 정석철은 동료였던 김명우(가명·61)를 보며 짐작한다. 그는 2021년 한해 먼저 퇴사해 소사장업체(하청업체) 소속으로 공장에 돌아왔다. 40년 해온 부품 가공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팀원들과 그대로 한다. 작업복 가슴팍에 붙은 명찰이 달라졌고, 임금만 최저임금 수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딱 펜스 하나 치고 다른 명찰 달고 하청이 된 거니까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적응되니 이만하면 남들보다 나아.” 김명우는 별일 아닌 듯 말하지만 자부심을 잃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입사할 땐 그래도 ‘우리가 최고다’ 이런 게 있었는데 일을 물려줄 젊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허탈한기라.”

최신 기계로 김명우의 40년 기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한참 작업 과정을 흉내 내며 동료들과 논쟁했으나 답은 찾지 못했다. 분명한 건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잘하는 사람의 감이랑 맞춰가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정도다. 자동화에도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 제조업 부족 인원은 지난해 하반기 16만1101명으로 한해 전보다 30.9% 증가했다. 기계에도 정든다. ‘낡은 기계’라고 동료들이 놀리자, 김명우는 “내 기계한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세번째 현재: 고립 이후의 목숨

늘 당연했던 동료들과의 농담과 투닥거림을 떠나 정석철은 산업단지의 어느 공장을 홀로 전전할 것이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기지요. 내 단단히 각오했습니다. 근데 몸이 걱정입니더. 주변 소식도 심상찮고.”

지난해 10월 한달 동안 창원 산업단지에서 60대 노동자 3명이 연이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한명은 소사장이었고, 두명은 하청업체에 속해 있었다. 각 죽음을 조사한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핵심은 60살 이상이라기보다 그분들이 일하고 있던 업체가 모두 소사장, 하청업체처럼 위험이 관리될 수 없는 사업장이었다는 점”이라며 “위험을 감지했다 해도 지금 같은 원·하청 구조에, 노조도 없는 이분들이 어디에 누구에게 얘기할 수 있었겠나”라고 말했다.

한데 엮여 있는 외주화, 고령화, 손기술의 단절, 노동자의 고립, 산재 위험…. 선진국 한국에서 공장 노동자의 현재를 짚어보던 정석철의 결론은 역시 미안함이다. “대한민국이 발전했다 카지마는 우리 세대가 나았다고 봅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비정규직으로 들어와서 노조도 동료도 없고, 기술 익히기도 힘드니까요. 앞으로 생활 측면에서 어떻겠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더. 미안하고 안쓰럽지요.”

정년퇴임 날 정석철이 받은 재직 기념패에는, ‘미래 지향의 사훈 정신을 바탕으로 혼신의 열정을 다했다’고 적혀 있다. 1986년,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긴장하며” 들어선 공장에서 정석철이 그려온 미래는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2023년, 청년에게는 한층 버티기 어려워진 공장에, 그 또한 같은 처지로 서게 되었다.

창원/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2023 공장을 떠나다에 부쳐

엄청난 성공이 가져온 불평등…‘성공의 덫’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유사 이래 우리나라처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는 없다. 매디슨 프로젝트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해방 직후인 1946년 916달러에서 2018년 3만7928달러로 4000% 이상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기적을 일구어냈다고 찬사를 받는 독일과 일본은 물론이고, 고도 성장의 새 역사를 쓴 중국도 우리와 비교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

경제성장만이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보수 정부가 집권할 때마다 도전받고 있지만, 2016~2017년 촛불 시민항쟁이 보여주듯 한국은 식민지를 경험한 후발 민주주의 국가 중 민주주의를 공고히 해나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불가사의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이런 엄청난 경제·정치적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한국인은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합계출산율(TFR)은 가장 낮으며, 노동시장은 불안정 고용상태에 있는 노동자로 넘친다. 지난 30년 동안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심각해지면서, 이제 불평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성공과 참담한 실패가 공존할 수 있을까. 혹자의 주장처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복지지출을 늘리면 실패가 가려질 수 있을까.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은 1990년 2.6%에서 2020년 13.4%(추정)로 불과 30년 만에 400%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복지 확대가 불필요했다는 것이 아니다. 복지지출을 늘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한국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을 것이다.

분명해진 것이 있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생산 방식을 바꾸지 않고, 복지 확대만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가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빠진 이유는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성공을 이룬 그 방식이 우리를 덫에 빠뜨린 근원이다.

1990년대 이후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숙련 형성을 우회해 급격한 자동화로 생산성을 높이는 성장 방식은 우리를 선진국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숙련노동을 우회하는 성장 방식은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급격히 감소시켰다. 그러자 한국 사회는 세대와 계층을 불문하고 모든 국민이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었다.

지금 당장 내 삶이 위태로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돌보고 연대를 생각하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괜찮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해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불안해한다. 한국 사회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정치가 바뀌면 우리가 성공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다양한 시민의 이해를 대의하는 정치체계를 만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바꾸려고 하는지 그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면, 설령 정치를 바꾼다 한들 우리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각자도생의 삶에 익숙한 시민의 이해를 즉자적으로 반영하는 정치는 지금보다 더 참담한 실패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치를 바꾸고, 바뀐 정치가 새로운 성공의 방식을 찾을 테니까 말이다.

방향은 명확하다. 성공했지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성장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최첨단 자동화 공정, 소수 엘리트, 재벌 대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자동화와 숙련노동,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을 이루며, 모든 국민이 혁신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성장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가 있다.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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