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대심판정에서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장소에서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1조 2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cne@hani.co.kr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금지’ 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것은 이 조항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헌재는 대통령 관저 인근의 모든 집회를 예외없이 금지하는 것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적 구성요소인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날 헌재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 집회를 열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에 대해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직무와 안전을 보호하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모든 집회를 예외없이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것이다.
헌재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고자 하는 경우, 대통령 관저 인근은 그 의견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장소”라며 “이런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집회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단순한 장소적 제한에 그치지 않고,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관저 근처 일대를 집회 금지 장소로 설정하고, 아무런 위험 상황이 없는 집회까지 예외없이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어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를 허용할 경우, 대통령 등의 경호와 방호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행정적 불편함이나 번거로움이 따를 수 있지만,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 구성요소임을 고려하면 국가는 다소간의 행정적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이날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해 왔던 경찰의 집시법 조항 해석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을 내놨다. 집시법은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 대해서만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 뒤, 관저와 집무공간이 분리되면서 법조항에 대한 해석이 문제됐다.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로 봐야 하기 때문에, 용산 대통령실 인근 집회는 금지돼야 한다”며 집회 신고에 대해 금지통고를 일삼아 왔다.
이에 대해 헌재는 ‘관저는 대통령과 그 가족의 주거용 공간’이라고 결정문에 명시했다. 이날 결정문을 보면, 헌재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과 가족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공용재산으로서, 침실·식당 외에도 연회실·접견실 등이 있어 대통령과 그 사족의 생활 공간인 동시에 부분적으로 대통령의 직무 수행 장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좁게 해석했다. 문언상 법률 해석의 범위를 넘어선 경찰의 확장 해석과 달리 본 셈이다. 다만 이날 헌재가 심리한 사건은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의 집회금지에 대한 사건이기 때문에,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에 대한 경찰의 금지통고에 대해 직접적인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헌재가 2024년 5월31일까지 이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국회는 새해 집시법 개정안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에서는 집회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헌재 결정으로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수많은 시민과 단체들의 노력으로 한걸음씩 앞으로 전진해 온 집회의 자유를 국회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거나 후퇴시키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경찰의 자의석 해석 범위를 확대하고 권한만 강화했다”며 “이번 헌재의 결정에 따른 집시법 개정은 최소한의 위헌성을 제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앞서 헌재가 2018년 6월 ‘국무총리 공관 인근 집회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바 있는데, 당시 국회는 ‘총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대규모 집회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의 집회만 허용한다는 모호한 내용으로 법 개정을 한 바 있다. 경찰의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 금지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내어 다투고 있는 김선휴 변호사는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의 집회·시위를 두고 관저의 해석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헌재 결정이 좀더 빨리 나왔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집회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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