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2월12일 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강기훈씨의 모습.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대법원이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과거 검찰의 위법한 수사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가족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소멸시효 도과를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대부분 기각했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강씨는 1991년 서강대학교 옥상에서 분신자살한 고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신 작성한 혐의(자살방조 등)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당시 검찰은 강씨를 김씨 사망의 배후로 지목하고 강압 수사를 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 필적이 같다고 감정했다. 이후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서의 필체는 김씨 것이라고 보인다고 결정하면서, 강씨는 재심 끝에 지난 2015년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에 강씨는 당시 수사검사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 등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앞서 원심은 불법행위 시점으로부터 24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보고 강씨 쪽 청구를 대부분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8년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 피해자가 위법한 직무집행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한 경우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강씨가 국가를 상대로 수사 과정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는 헌재 위헌 결정에 따라 소멸시효를 적용받지 않는다”며 “원심은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강씨의 청구를 배척했으므로 이를 파기한다”고 밝혔다.
이날 판결로 강씨는 위법한 검찰 수사에 대한 손해배상을 추가로 받을 길이 열리게 됐다. 앞서 원심은 필적 감정을 잘못한 데 대한 국가배상책임은 인정하면서도, 밤샘 조사와 변호인 접견 금지 등 위법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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