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관련 지난 10월3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긴급 상황점검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국회가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의 첫발을 내딛었다. <한겨레>는 국회 국정조사에서 되짚어야 할 10월29일 저녁 6시34분 112 첫 신고부터 30일 새벽 2시30분 첫 재난대책회의까지 절규로 가득 찼던 이태원 참사의 지옥 같은 8시간을 정리한다. <한겨레>가 직접 취재한 내용과 함께 △경찰 특별수사본부 언론 브리핑 △소방·경찰·대통령실 등 정부 자료 △구조 상황 보고서 △현장 녹취 및 메시지(112·119 신고 녹취, 소방 무전 녹취, 모바일 상황실 메시지) △국회 요청 자료 등을 종합해 국가가 사라졌던 결정적인 순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참사 발생 직후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와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절규가 119 신고 전화로, 소방 무전으로, 의료진 모바일 상황실에 쏟아졌다. 그러나 경찰 지휘부의 보고체계는 멈춰 있었다.
10월29일 당시 현장 총괄 책임자였던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대통령실 주변 집회를 지켜보다 설렁탕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밤 9시57분 녹사평역에 도착했다. “(경찰이) 빨리 오셔서 인원 통제 좀 해주셔야” 한다는 112 신고가 들어오는 상황이었지만, 이 서장은 막힌 도로 상황에서 “단 한 건의 참사 관련 보고도 받지 못한” 채 관용차에 머물다가
11시5분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녹사평역에서 사고 현장까지는 2㎞.
밤 10시54분 서울시와 용산구 공무원에게 ‘이태원 압사’ 재난문자를 행정안전부가 보냈다. 그러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11시20분에야 참사를 알았다고 한다. 이들보다 먼저 대통령이 보고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시1분 참사를 보고받고
11시21분 이상민 장관에게 첫 지시를 내렸다. “신속한 구급과 치료가 이뤄질 수 있게 만전을 기하라.”
11시36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임재 용산서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사건을 인지했다. 참사 현장을 목격하고도 이 서장은 김 청장에게 곧바로 보고하지 않았다. 서울 전역의 기동대 파견 권한이 있는 김 청장은
11시44분 가용 부대를 급파하라고 지시했다. 첫 112 신고가 들어온 지 5시간 만이었다. 경찰 최고 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30일 0시14분 가장 늦게 보고받았다
. 경찰청 상황실에서
29일 밤 11시32분 문자를 보냈지만,
11시52분 전화를 걸었지만 잠든 그를 깨우진 못했다.
경찰 지휘부가 잠든 사이 거리에는 주검이 쌓였다.
30일 0시8분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사망자와 시피아르(CPR·심폐소생술) 환자를 순천향(대)병원 집결”하라고 지시했다. 순천향대병원은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약 1㎞) 병원이었다. 최 서장은 구급차가 현장과 병원을 빠르게 오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0시25분부터
1시까지 구급차 29대가 순천향대병원으로 향했다.
사망 추정 환자가 일시적으로 순천향대병원으로 몰리자 혼란이 발생했다.
0시46분 순천향대병원은 “사망 추정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도
1시39분과 45분 “순천향대병원에 보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소방은 병원의 상황을 몰랐다.
2시24분 뒤늦게
최 서장은 사망 추정자를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2시30분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안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첫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신속한 신원 확인 작업”을 지시했다. 그 시각 순천향대병원 응급실 앞에는 밤새 연락이 끊긴 가족을 찾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병원 경비원들은 “아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나”라며 울부짖는 여성을 막아서며 “저희도 모른다”고 했다.
장필수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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