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입장표명 및 계획 발표를 마치고 인사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책임지는 게 경찰밖에 없는가. 행정안전부, 용산구청, 소방당국의 책임은 없는가?”
경찰 역사 최초로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의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받은 가운데, 일선 경찰들의 민심이 들끓고 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의 경찰 책임론은 인정하면서도, 경찰에게만 과도한 책임을 씌우는 건 “꼬리자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겨레>는 8~9일 경찰청 특수수사본부가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데 대한 전국 간부급 경찰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서울의 한 일선 경서 간부인 ㄱ 경정은 “이태원에서 무려 156명이 돌아가셨는데 경찰청장이 그만두지 않으시는 게 이상하다. 경찰관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만두시는 게 맞다”고 말했다. 경남 지역의 ㄴ 경감은 특히 서울경찰청장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서울경찰청에서 핼러윈데이 인파보다 대통령실 경비와 인근 집회 관리를 더 중요하게 여겨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수뇌부가 직책을 유지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의 또 다른 일선서 간부 ㄷ 경정은 “지금 당장 윤 청장과 김 청장이 옷을 벗을 일은 아니다. 피의자 신분도 아니지 않나. 수사대상이 되면 옷을 벗어야 겠지만, 지금은 수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ㄴ 경감도 “서울청장과 다르게, 경찰청장은 사퇴보단 사태 수습에 매진해야 한다. 경찰청장까지 없어지면 서울만 흔들리는 게 아니라 전국이 흔들린다”고 덧붙였다.
많은 경찰들은 경찰청·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에 집중된 책임론에 “경찰 책임으로 꼬리자르기를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경찰국을 만들어 지휘하겠다던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이 책임을 지지 않고 선을 긋는 모습에 실망했다고 입을 모았다.
전북 지역의 ㄹ 경정은 “참사 결과를 보면 문제의 원인이 경찰에만 있다고 몰아가는 것 같다. 본질적으로는 재난 상황에서 용산구청, 소방당국에도 책임이 있다”며 “경찰의 보고체계 등을 정비해야 하는 행안부 경찰국에 대한 책임은 없는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ㄴ 경감은 “경찰국을 설치할 때 이 장관이 ‘경찰은 지휘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장관은 반성의 기미도 없고, 남남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큰 사건이니까 말을 못하는 거지 현장 경찰관들은 경찰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이 장관의 처세에 대해 분노와 자괴감, 슬픔 등 서러움이 가득 차있다”고 강조했다. ㄱ 경정도 “윤 대통령은 검찰이 수사하듯 누구에게 형사 책임이 있는지만 보는 것 같다.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국무총리, 행안부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형사적 책임이 없으니까 괜찮다고 보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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