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튿날인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인근 지하철역 들머리에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화들이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제 갓 새로운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조카였다. 함께 살아도 부대낄 일 없는 착한 동생이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딸이었다.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가 앗아간 얼굴들이다. 30일 저녁, 서울 곳곳에 차려진 참사 희생자 빈소에서 가족들은 젊고 소중했던 조카, 동생, 딸의 모습을 기억했다.
“엄청 효녀지요, 효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참사 희생자 박아무개(27)씨의 이모는 “평생 일만 한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던 조카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박씨는 올해 간호 대학에 입학했다. 간호조무사 일을 하다가 간호사가 되기 위한 시작점에 섰다. 그 시작점에서, 박씨는 전남 목포에서 함께 간호대를 다니는 친구와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광주에서 달려온 엄마는 중환자실에 누워 임종을 앞둔 박씨를 만나야 했다. 이모가 기억하는 박씨의 못다 이룬 꿈은, 역시 엄마와 함께다. “자동차 면허증도 땄어요. 중고차라도 뽑아서 엄마하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어요.”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참사 희생자가 된 동생 박아무개(44)씨를 그리는 형의 안경에는 눈물 자국이 묻어있었다. “엄청 울었어요. 온종일 울었어요. 동생이랑 같이 살았잖아요. 좋은 동생이었거든요.” 박씨는 인터넷 사업을 했다. 박씨의 형은 “핼러윈 파티에 간다는 말을 안 하고 갔는데, 지난해에도 갔었던 모양이더라. 아무래도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더 북적이는 곳에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동생이 참사의 현장에 있었던 이유를 생각했다.
“한창 공부만 하고 이제 딱 좀 재미있게 살려고 했던 순간에 이렇게 돼버렸네요.” 압사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아무개(26)씨는 얼마 전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삼육서울병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만난 이씨의 아버지는 “주변에 자랑도 하고 그랬는데, 딱 자격증을 써먹을 시점에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딸에 얽힌 기억은 또한 사소하다. 이씨의 영정 앞에는 과자 ‘자가비’가 놓여 있다. “상이 뭔가 허전한 것 같아서 좋아한 과자가 뭐였지, 하다가 생각난 게 저 과자였어요.”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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