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도중에 8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해 법원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범죄 혐의 소명’ 여부는 밝히지 않아 눈길을 끈다. 이 사건의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혐의 내용에 대한 판단은 뒤로 돌린 것으로 풀이되는데, 이 돈이 ‘대선자금’으로 흘러갔는지 밝히는 검찰의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김세용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지난 22일 김 부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든 발부 사유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앞서 김 부원장이 검찰 소환에 불응한 사실이 없는데도 체포영장을 발부해 법원도 혐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는데, 정작 구속영장 발부 사유에서는 관련한 판단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될 수 있는 사안이라 법원에서 부담을 느낀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영장심사가 본안 재판처럼 엄격한 증명까지 요구하진 않지만, 어차피 범죄 혐의에 관한 증거가 어느 정도 인정돼야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며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밝히지 않은 건 당연해서일 수도 있고,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범죄 혐의 소명은 당연히 전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안 밝힌 거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부원장 구속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재명 대표의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 부원장은 지난해 4~8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정민용 변호사와 공모해 남욱 변호사에게서 총 8억47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고 있다. 이 시기가 민주당 대선 경선 시기와 겹치는데다, 김 부원장이 당시 이 대표 캠프 총괄부본부장이었던 만큼 검찰은 이 돈이 이 대표의 대선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구속 뒤 처음으로 김 부원장을 불러 자금의 성격과 사용처 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향후 정진상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 정무조정실장 등 이 대표의 또 다른 측근들 조사에도 나서는 한편, 지난 19일 민주당의 반발로 무산된 민주연구원 사무실 압수수색도 재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앞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검찰과 대치하며 압수수색을 방해한 것을 두고 ‘법치주의 훼손’이라 지칭하며 “정당한 법 집행에 타협은 없다”고 압수수색 영장 재집행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대표를 표적으로 한 검찰 수사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한 야당이 25일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첫 국회 시정연설을 비롯해 ‘예산 국회 보이콧’까지 시사하고 있어, 압수수색 시기와 방식 등은 ‘숨고르기’를 거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검찰 수사가 이 대표까지 이어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김 부원장이 돈을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이라, 검찰은 자금이 오간 게 사실인지, 이 돈의 성격이 불법 정치자금이었는지, 실제 이 돈이 경선 활동에 쓰였는지, 이 대표 또한 이를 알고 있었는지 등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현금으로 돈이 오간 경우, 조사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김 부원장이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대선자금 수사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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