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신청.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지난주 <한겨레> 기사 가운데 독자들이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낸 것은 ‘300가구 전세사기 ‘빌라왕’ 지병 사망’(13일치)이었다. 무자본 갭투자로 서울 빌라 300여채를 사들여 수백억원대 세입자들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40대 남성 ㄱ씨가 경찰 조사를 앞두고 지병으로 숨졌다는 내용이다. 같은 날, 감사원의 공무원 피살 사건 중간 감사 결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무고 혐의’ 송치 등 핫이슈가 많았지만 ‘300채 빌라왕’ 사망 소식을 가장 궁금해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또다른 ‘빌라왕’ 같은 전세 사기꾼들이 등장하며 피해 규모와 양상이 확산하고 있다. 이제 ‘누구나 전세 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사회적 공포 대상이 되고 있다. 3400여채 빌라를 매입해 전국 최대 규모 전세 사기 행각을 벌여 ‘빌라의 신’으로 불리는 일당이 지난달 30일 구속되기도 했다. “전세 사기는 이제 터지기 시작했고, 앞으로 폭증할 것”이라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2020년 기준 수도권 자가보유율이 53%에 불과한 상황에서,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이들에게 ‘언젠가 나도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퍼져가고 있다. 일벌백계하겠다는 수사기관의 엄포와 함께 전세 사기 적발 보도가 잇따르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1억8천만원짜리 전세 사기 피해로 1심 재판을 진행 중인 이아무개(28)씨는 수사 과정에서 집주인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빚만 있는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집주인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받고 인감과 주민등록등본을 넘긴 게 전부라 돌려줄 돈이 없다고 한다. ‘전세 사기, 지구 끝까지 쫓아가 엄벌’이라는 원칙도 좋은데, 피해자 입장에선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이 지옥이 끝난다”고 토로했다. 피해 보증금을 되찾기 힘든 건 ‘빌라왕’들이 임대사업자로 이름을 올릴 ‘바지 집주인’을 구해 앉혀두고, 전세 계약이 만료된 시점에 이들에게 폭탄을 떠넘기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리 명의자들 대부분은 노숙자나 사회초년생 등 경제적 능력이 없는 이들이다. 부산경찰청은 지난달 50억원대 전세 대출 사기 행각을 벌인 일당 48명을 검거했지만, 이들 중 31명이 사회초년생과 지적장애인이었다. 금융기관 간부 등으로 구성된 주범들은 숙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이들을 바지 집주인으로 악용하거나, 이들 명의로 수십억원의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챙겼다. 많게는 2억원가량의 빚을 감당하게 된 건 ‘갚을 능력이 없는’ 사회초년생과 지적장애인이었다. 명의를 빌려준 혐의로 입건까지 됐다. ‘빌라왕 사망’을 두고도 ‘보증금을 못 찾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ㄱ씨의 사망으로 공소권이 사라지면서 피해자들이 “누구에게 돌려받느냐”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빚더미에 올라 호텔에서 지내던 ㄱ씨는 주범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ㄱ씨 역시 ‘바지 임대사업자’였을 뿐, 실제 이득을 챙긴 주범은 잡히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숨진 ㄱ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했지만, 빌라 건축주와 부동산 중개 브로커 등 사기 공범에 대한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세 사기를 일벌백계해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던 경찰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장나래 이슈팀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