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부동산중개업체 매물 게시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화재보험을 들어준다며 임차인의 신분증 사본을 받아 몰래 다른 곳으로 전입신고한 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새로운 유형의 전세 사기 의심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 중이다.
20일 <한겨레> 취재 결과, 인천 계양경찰서는 20대 송아무개씨를 사기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다. 송씨를 경찰에 고소한 세입자 김아무개씨가 전한 사연은 이렇다. 송씨는 지난 2월 말 2억500만원에 주택을 매입한 뒤 보름 여 지나 김씨와 보증금 2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사실상 500만원으로 2억원 상당의 주택을 산 ‘갭 투자’였던 셈이다. 7개월 여 뒤 송씨는 김씨에게 신분증 사본을 요구했다. 화재보험에 들기 위해서 세입자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둘러댔다.
김씨 신분증 사본을 확보한 송씨는 이를 활용해 김씨 주소를 울산 남구로 옮기고 김씨가 살던 집에는 본인이 전입신고를 했다. 세입자 김씨는 본인도 모르게 서류상으로는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울산 남구에 거주하는 모양새가 됐다. 뿐만 아니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도 위협을 받게 됐다.
송씨가 김씨 몰래 은밀하게 전입신고를 한 까닭은 대출을 받기 위해서인 것으로 경찰은 의심한다. 집값과 전세값이 엇비슷한 터라 담보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자 보유 주택에 전세권이 설정되지 않은 것처럼 서류를 꾸민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송씨는 전입신고 조작 이후 서류 심사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대부업체에서 1억여원의 주담대를 받았다. 경찰 쪽에선 신종 전세 사기 수법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당국은 서류상 전입신고 조작 행위를 파악하지 못했다. 주민등록법 시행령에서는 전입자의 전 세대주와 새로운 세대주가 다를 경우 전 세대주 또는 전입자에게 전화 등을 통해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 남구의 행정복지센터는 김씨에게 관련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전입신고를 접수했다.
해당 행정복지센터는 “김씨가 전입신고된 집의 세대주가 김씨의 인적사항, 과거 집 주소 등을 정확하게 써 넣었고 김씨의 전입신고 위임장 등 필요한 서류도 제출했다. 전입신고는 신고제라서 서류가 완벽하면 받아줄 수밖에 없다”며 “전화번호는 전입신고 과정에서 다른 전화번호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을 완벽하게 막으려면 전입 신고 과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울산 남구에 전입 신고된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주민등록등본을 확인하다가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주소 변경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서류상으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전입신고가 이뤄졌기 때문에 행정소송 등을 통해 과거 전입신고가 잘못됐다는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뒤, 김씨는 전입신고 효력 중지 가처분 신청과 무효 소송을 냈다.
김씨는 “나같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당 행정복지센터 쪽도 “관련 내용을 울산 남부경찰서에 수사의뢰한 상황이다. 잘못된 사실이 확인된다면 최대한 빨리 김씨의 주소지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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