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빌라촌.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금융기관 40대 부장급 간부 박아무개씨와 건설 시행사 대표, 공인중개사 등 일당 10여명은 2020년 1월부터 2년간 사회 초년생 및 지적장애인 등 이른바 ‘가출팸’을 모집해 부산의 한 빌라에서 숙식을 제공했다. 숙식의 대가는 이들의 ‘이름’이었다. 박씨 일당은 은행 19곳에서 모두 30여건의 전세자금을 이들 이름으로 대출받아 저당권을 설정하는 수법으로 보증금 50억원을 챙겼다. 특히 제2금융권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박씨는 은행이 전세자금을 빌려줄 때 현장실사를 나오지 않고, 금융기관간 정보 공유도 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파고 들었다. 그는 부산지역 미분양 아파트나 빌라, 오피스텔의 세입자를 계속 바꾸는 방식으로 전세계약서를 위조했다. 건설시행사 대표는 ‘짜고 치는’ 가짜 계약인 것을 알면서도 미분양 물량에 대한 부담으로 범행에 가담했고, 공인중개사 김아무개씨도 계약서를 꾸미는 일을 맡았았다. 이들은 역할 분담에 따른 수익을 분배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으로 전세 대출을 받은 사회 초년생 등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가량 빚을 지게 됐다. 명의를 빌려준 혐의로 경찰에 입건까지 되는 신세가 됐다.
경찰청은 지난 7월부터 두달 동안 전세 사기 특별단속을 벌여, 박씨 일당 등을 비롯해 모두 163건의 사기 범죄를 적발해 348명을 검거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가운데 34명은 구속됐다. 전세 사기 피해액은 200억7천만원에 달한다.
범죄유형별로는 조택보증·보증보험을 받을 수 없는 건축물인데도 이를 속여 임대차계약을 허위로 체결해 보증금을 편취하는 허위보증·보험 유형이 185명으로 가장 많았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없이 중개사무소를 개설하거나 중요사항에 대해 거짓 정보를 알려주는 등 공인중개사법 위반(86명), 담보·채무 등으로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데도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깡통전세’ 등 보증금 미반환(30명), 신축 빌라 건축주와 공인중개사·분양대행사·매수인 등이 짜고 미분양 빌라를 무자본 매입 뒤 보증금을 가로채는 무자본·갭투자 사기(21명) 등이 많았다. 검거된 피의자들은 대출금 편취에 가담한 가짜 임차인(105명), 공인중개사 및 중개보조원(104명), 임대인(91명), 건축주(6명) 등 부동산 거래단계마다 두루 포진해 있었다.
현재 경찰이 현재 내사·수사 중인 전세 사기 사건은 모두 518건(1410명)이다. 경찰은 또 국토교통부로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 자료 등 모두 1만3961건의 수사의뢰 요청과 자료를 이첩받아 일부는 곧바로 수사착수하고 일부는 내사(입건 전 조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 7월 세모녀 전세사기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전세 사기 전담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국 경찰관서에서 전담수사팀 296개팀을 지정했다. 집중단속은 내년 1월24일까지 6개월 동안 이어진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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