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빵을 어떻게 먹겠나.” “노동자의 피 묻은 빵을 사먹지 맙시다.”
지난 15일 새벽 경기 평택의 에스피씨(SPC) 계열 빵 재료 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진 뒤에도 다음날 기계 가동이 계속됐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에스엔에스(SNS)에는 이런 글이 여럿 올라오면서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단순히 산업재해 사고가 발생한 것을 넘어 회사의 비상식적인 후속 대응에 대한 분노가 ‘SPC 불매’ 해시태그 운동 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18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에스피씨가 운영하는 브랜드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 이날 기준 1만6000건 넘게 리트윗된 그림에는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샤니, 삼립식품 등 베이커리·디저트 브랜드부터 쉐이크쉑, 파스쿠찌 등 외식과 커피 브랜드 로고가 나열돼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도 ‘SPC 불매’, ‘불매운동’ 등의 열쇳말이 올라와 있다.
20대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회사 쪽의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숨진 노동자 ㄱ(23)씨의 동료들은 사고 당시 2인1조가 아닌 단독 근무를 했다는 증언을 했다.
회사는 고용노동부가 안전장치가 없는 7대에만 작업중지를 명령했다는 이유로 사고 이튿날 남은 기계 2대의 가동을 곧장 재개했다.
직장인 양태현(30)씨는 “노동자가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바로 공장을 가동시키는 행태에 소름이 끼쳐 불매를 결심하게 됐다”며 “에스피씨 브랜드 앱인 해피오더 앱도 바로 지웠고 동네 작은 빵집이나 카페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손주연(47)씨도 “이번 사고와 관련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뉴스를 보다보니 마음에 상처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에스피씨와 관련된 것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온라인에 공유되고 있는 에스피씨(SPC) 브랜드 목록. 트위터 캡처
에스피씨를 대체할 품목에 대한 정보도 공유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삼립·샤니 호빵 대신 다른 브랜드 등에서 나오는 호빵을 올리기도 하고, 동네빵집이나 슈퍼 아이스크림, 시장 도넛 등으로 대체하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삼립에서 일부 햄버거 브랜드의 햄버거빵도 납품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패스트푸드점을 불매하겠다는 글도 보였다.
직장인 김유진(31)씨는 “에스피씨 브랜드가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은 물론 지인에게 선물 받은 기프티콘도 에스피씨 브랜드가 많으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불매를 하고 있다”며 “노동자를 위해 시작한 불매운동이 역설적으로 소속 노동자와 가맹점주에게 손해를 끼칠 것 같아서 안타까운 점도 있으나 에스피씨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대로 된 노동환경을 제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맹점 점주들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에 일각에서는 “에스피씨를 규탄하는 점주가 있다면 그곳은 이용하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에스피씨 불매운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의 단식을 계기로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에 대한 노조탈퇴 회유와 승진차별 등 회사 쪽의 부당노동행위가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에스엔에스에서 불매를 독려했다. 대학가에서는 불매 대자보가 붙여지고, 학내 이벤트 상품에서 에스피씨 브랜드 기프티콘을 제외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그동안 느슨한 불매를 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에스피씨의 식품을 먹는다는 건 노동자의 피와 살을 씹어먹는 거다 싶어서 앞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ㄱ씨는 지난 15일 새벽 경기도 평택의 빵 재료 제조업체인 에스피엘(SPL) 공장에서 냉장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스를 만들던 중 재료를 배합하는 교반기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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