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을 향한 본격적인 윗선 수사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감사원이 전 정권 핵심 인사들의 구체적인 비위 행위를 공개한 뒤 수사 요청에 나서면서, 윗선 수사에 명분과 실리를 모두 제공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어민 북송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 3부(부장 이준범)는 당초 16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던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소환 조사를 미루고 일정을 다시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일정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노 전 실장 쪽이 소환 조사 시점을 미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실장은 2019년 11월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한 뒤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선원 2명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청와대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북송 결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이른 시일 내에 조사 일정을 재조정한 뒤 노 전 실장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노 전 실장 조사에 나선 점을 두고 윗선 수사가 본격화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사팀은 지난 7월부터 국정원·국방부 등 실무자들을 불러 조사했고 대통령 기록관 압수수색을 마무리한 뒤 김유근 전 국가안보실 1차장, 김준환 전 국정원 3차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을 잇달아 불러 조사를 진행해왔다. 사실상 윗선 수사만 남은 상황에서 노 전 실장 조사를 시작으로 전 정권 안보라인 및 핵심 인사 수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노 전 실장과 더불어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 문재인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한 검찰 간부는 16일 <한겨레>에 “수사팀이 노 전 실장 조사를 시작으로 정의용 전 실장이나 서훈 전 원장 등 핵심 인사들을 본격적으로 부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서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감사원의 서해 사건 관련 수사요청서를 분석 중이다.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지난 14일 감사원이 국방부·통일부·국가안보실 등 관계자 20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 요청을 하며 제출한 각종 자료를 대검으로부터 확보했다. 당시 감사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국방부·통일부 등이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실종된 뒤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른 초동조처를 하지 않았고 △국방부·국정원은 이씨 관련 첩보 보고서 106건을 삭제했으며 △국가안보실의 ‘월북 발표’ 지시를 받은 국방부‧해경이 부정확한 근거로 월북을 속단한 뒤 이를 발표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감사원은 보도자료에 날짜별‧시간대별 국가안보실‧국방부 등의 대응뿐만 아니라 문 전 대통령,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등의 각종 발언이나 비위사실 등을 상세하게 담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감사원 수사 요청으로 윗선 수사에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감사원이 전 정권 핵심 관계자들의 각종 비위행위를 공개하면서 수사 명분을 더한 데다, 대대적인 감사로 확보한 각종 자료가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감사원 자료에서 검찰이 파악하지 못한 자료와 진술 등이 나올 수 있어 윗선 주요 대상자 혐의 적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 7월부터 수사를 진행해 온 검찰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감사원 자료를 검토 중인 상황이나, 이미 수사를 상당 부분 진행한 상황이라 수사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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