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위원회 의결을 얻지 않은 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에 착수해 ‘위법 감사’라는 지적을 받은 감사원이, 검찰 공소장에 비견될 만큼 구체적인 사유를 들어 전 정권 인사들을 대거 수사 요청했다. 그간 천천히 진행되던 검찰의 ‘윗선’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감사원이 전날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이 주검을 소각했다는 국방부 발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분석을 지시했다’고 특정해, 검찰이 ‘최종 의사 결정자’의 혐의까지 들여다볼 명분을 쌓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원은 14일 오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 전 정권 인사 20명을 수사해달라고 대검찰청에 요청했다. 검찰은 같은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해 이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에 사건을 배당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전날 중간 감사결과 발표를 통해,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지휘로 해양경찰청이 증거를 은폐하고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월북을 했다고 결론을 뒤바꿨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감사원 수사요청으로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감사원이 비위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 검찰 수사에 힘을 실었고, 검찰이 미처 확보하지 못한 증거 자료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는 “감사원은 검찰과 달리 영장 없이도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때문에, 검찰보다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검찰에 감사 자료를 전달할 것인지 묻자,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고 답했다.
전날 20명에 달하는 수사요청 대상에서 감사원은 문 전 대통령을 제외했다. 그러면서도 감사원은 문 전 대통령이 당시 사건에서 이대준씨의 주검을 소각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구체적 정황을 밝혔다.
당초 국방부는 ‘북한이 시신을 소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지만, 문 전 대통령이 ‘부유물을 소각한 것’이라는 북한 쪽 통지문을 받은 뒤 “시신 소각 발표가 너무 단정적이었다. 재분석하라”고 지시하자 입장을 뒤바꿨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지시로 공적 판단이 뒤바뀐 직권남용의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공안 수사 경험이 많은 다른 변호사는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따져볼 기회를 준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수사 착수의 후폭풍이 클 것이기 때문에 정무적 판단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반면, 현직 부장검사는 “현 단계에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여부를 단정 짓기 어렵다. 박지원 전 원장 등 윗선 조사가 완료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검찰은 전날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조사한 데 이어 이날 김홍희 전 해경청장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감사원은 중간 감사결과 발표를 통해, 김 전 청장이 이대준씨 구명조끼에 (국내 유통되지 않는) 한자가 적혀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나는 안 본 거로 할게’라고 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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