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청년 부채’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비롯한 ‘도덕적 해이’부터 자산도 직업도 불안정한 ‘세대의 비극’까지 청년 부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사실도 있다. 빚이 임계에 달한 2030의 비율이 11.3%로 전 세대 평균(6.3%)의 두배에 가깝다는 통계, 그리고 오늘의 불안은 내일 역시 위태롭게 한다는 경험칙이다. 시각이 갈리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사안을 제대로 살필 필요가 있다. 청년 부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김지은 기자가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에서 지난여름 3주일 동안 일했다.
지난여름 대부업체에 취업해 취재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주위 사람들은 대번에 사색이 됐다. “너 아무도 모르게 어디 끌려가는 거 아냐?” 별일이야 있겠냐고 웃어넘겼지만 걱정이 안 됐다면 거짓말이다. 대부업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 주는 이미지는 강렬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대가는 잔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하게 정당화되어 왔다.
정작 취업해보니 대부업체는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법을 잘 지켰다. “옛날에야 욕도 하고 쫓아가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 아냐. 할 말만 하는 거지.” 동료 직원의 말에 안도했다. 빚의 세계는 철저하게 ‘합법적’으로 굴러갔고, 채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예상은 또 깨졌다. “죄송한데, 돈 내는 날까지 전화를 계속하실 건가요?” 전화를 받은 30대 여성은 이자 납부일(약정일)이 다가온다는 안내 멘트를 끊고 질문을 던졌다. 통화를 할 때마다 수화기 건너편에 존재하는 괴로움과 불편함, 죄책감이 전해졌다. 채무자의 처지가 공감돼 통화 중 말문이 막혀 더듬거리다 상사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추심이 합법적이라고 채무자에게 추심이 편안할 리 없었다.
그렇게 통화한 청년 채무자들의 기록을 확인해보면, 상당수는 이미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갚은 장기 채무자였다. 때론 원금의 두세 배를 이자로 낸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청년들에 대한 이자 감면이나 원금 일부 탕감에 대해서는 ‘도덕적 해이’ 비판이 거센 게 현실이다. 하지만 대부업체에서 전화 너머로 만난 청년들은, 적어도 도망치기보단 하루하루 갚을 수 있는 돈을 최선을 다해 내고 있었다.
대부업체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기사가 나간 뒤 청년들을 돕고 싶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반면 “그럼 돈을 빌리지 말았어야지. 어쨌든 빚은 갚아야지 않냐”는 목소리도 그만큼 접했다. 맞는 말이다. 청년들도 이를 잘 알기에 위축된 목소리로 추심 전화를 받고 최소 이자라도 꾸역꾸역 입금한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의 원칙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포샤 판사 앞에서 돈을 갚지 못하면 주인공 안토니오의 심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베어 가겠다고 한 계약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포샤는 “살점은 떼어 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선 안 된다”고 판결한다. 돈을 갚지 못한다고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판사가 상상 속 이야기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도 ‘빚은 갚아야 한다’는 원칙뿐 아니라 부채가 사람을 해할 정도로 위협이 될 때는 채무자를 구제해야 된다는 포샤 판사의 원칙을 고려할 수 있다면 좋겠다. 빚진 청년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것은 경제와 고용, 그리고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부채로 삶의 의지를 잃은 청년의 삶은 머지않아 사회가 져야 할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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