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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월급 빠듯해 낸 빚 2800만원…친구와 밥 한 끼도 두렵다

등록 2022-09-19 05:00수정 2022-09-19 16:12

[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 점점 고립되는 빚더미 삶
돈 버는 족족 대출 갚는데 쓰여
친구 피하고 가족 눈치보게 돼
공부·여행·저축같은 건 언감생심
“내일의 꿈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당장 오늘을 감당하기도 버거워”
청년의 빚은 다양한 모양을 가졌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갑작스러운 사고나 범죄 때문에, 때론 투자를 위해서 청년들은 대출을 받았다. <한겨레>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16명의 빚진 청년을 8월5일부터 26일까지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은 19~36살로 서울·인천·청주·울산·광주 등에 거주했다. 청년의 빚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했는지를 두차례에 걸쳐 살핀다. 생계 혹은 어쩔 수 없는 불운 때문에 빚을 지게 된 청년들을 먼저 만난다.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② 연체의 늪에 빠진 이유

③ 청년빚의 다양한 얼굴

④ 대출이 제일 쉬웠어요
청년의 빚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했는지를 두차례에 걸쳐 살펴 봤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nbsp;
청년의 빚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했는지를 두차례에 걸쳐 살펴 봤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동굴에 갇히는 것.”

빚을 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저축은행과 카드론 대출을 받은 김아무개(27)씨가 답했다. 빚은 사람을 어두운 곳에 홀로 가둔다. 빚 탓에 청년들은 친구와 밥을 먹고, 취업 강의를 듣는 소소한 일상을 포기한다. 친했던 이들, 혹은 자신의 꿈과 자연스럽게 멀어져간다. 가족과도 갈등한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외로움과 추심의 공포가 자리 잡는다.

<한겨레>가 만난 빚에 갇혀버린 청년 16명의 평균 소득은 211만원이었고,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은 100만원이었다. 주거비, 통신·교통비, 생활비 등을 포함한 평균 지출은 135만원이었다. 39살 이하 가구의 소비 지출은 월평균 256만원(2022년 통계청)이다. 빚진 청년들이 평균 소비에 견줘 120여만원 적게 쓰지만, 적자 인생을 매달 견뎌야 했다.

친구도, 가족도 멀어져갔다

“친구들은 제 상황을 몰라요. 같이 놀자고 해도 돈이 없어서 만나지 못하죠.” 동굴에 갇힌 것 같다고 말하는 김씨의 빚은 2800만원이다.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일해서 한달에 버는 150만원을 고스란히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는 데 쓴다. 생활비는 부모에게 빌리거나 새벽에 5시간씩 택배 일을 하며 벌어 충당한다. 그러다 보니 돈이 들 것 같은 만남은 모두 피하게 됐다.

삶이 너무 팍팍해 한번은 부모님께 빚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화난 부모님의 모습은 난생 처음이었다. ‘지금 몇년을 일했는데 빚이 있느냐’며 다그쳤다. 그 뒤로는 누구에게도 빚이 있다고 말하기 꺼려졌다. “빚이 있다고 말하면 친구가 불쌍하게 볼 테니까…. 그런 시선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긴 어렵죠. 만날 때마다 친구가 ‘밥을 사줘야 하나’ 하고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요.” 가까운 친구들과 서먹해졌다.

7000만원의 대출을 받은 허아무개(33)씨는 1만원이 없어 밥값을 걱정하는 처지다. 친구들과 밥 먹고 결제를 해야 할 때는 계산이 가능한지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인생이 망했다는 느낌보다는, 그런 사소한 것이 정말 힘들어요.”

특히 빚진 사람과 빚 쓴 사람이 다를 때는 더 갈등이 심하다. 황아무개(27)씨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 채무 중 일부인 7000만원을 대신 갚기 위해 빚을 졌다. 이후 공무원이었던 그는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회사를 그만두려 할 때도 빚 때문에 망설였다. 결국 일을 그만둔 뒤 지금은 재취업을 준비한다. 하지만 공부할 시간이 없다. 당장 빚을 갚아야 해 일용직을 전전한다. 선택의 고비마다 한발 물러서야 하는 처지를 비관한다. “제 빚도 아닌데 왜 이걸 갚아야 하느냐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아지더라고요.”

일상에 깃든 절망과 두려움

빚은 사소한 일상에도 깃들어 절망을 일깨운다. 아이가 태어난 뒤 생활비가 필요해 대출을 받았던 김아무개(27)씨는 더 이상 배달음식을 시켜 먹자는 말을 못 한다. “아이를 돌보는 아내가 지쳤을까 봐 종종 배달음식을 먹었어요. 하지만 빚이 늘어나면서 ‘시켜 먹자’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김아무개(24)씨는 2400여만원의 빚 때문에 공무원 학원을 끊을 수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을 다니지만 저는 인터넷강의밖에 들을 수가 없어요.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추심의 두려움은 항상 곁을 맴돈다. 치킨집을 하다가 빚을 지게 된 전아무개(25)씨는 최근 개인회생을 승인받았다. “회생 신청 전에 (이자를) 석달을 연체했어요. 대부업체에서 건 전화일까 봐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못 받았죠. 대부업체에서 ‘집 앞 방문 예정’ 같은 문자를 보내거든요. 그럼 친구 집으로 도망쳤어요.” 대부업체는 추심이 금지된 회생 승인 이후에도 부모의 가게를 찾아가 “아들 어디 있냐”고 압박했다. 그때 회생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들켰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사채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7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홍아무개(22)씨에게도 추심원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집은 물론이고 아파서 입원한 병원 앞까지도 왔어요. 병원에 입원한 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대출은 그냥 ‘지옥’이에요. 왜 거기에 손을 대서 이 지경이 됐을까요.” 홍씨는 후회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꿈꿀 수 없는 내일

나의 ‘오늘’이 자녀의 ‘내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도 견디기 어려운 공포다. 발달장애인인 이아무개(26)씨는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급전을 구하려다 1000만원가량 대출 사기를 당했다. 곧 태어날 아이 용품과 가재도구도 챙기지 못한 채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 고시원에 들어갔다. 아이는 그때 태어났다. 예전 집으로 다시 짐을 가지러 갔지만, 집주인은 월세방을 걸어 잠가버렸다.

아이에게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너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어.” 친구가 말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는 빚이 해결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묻자 일상을 이야기했다. “아이한테 필요한 것을 사주고 싶어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내내 울먹였던 이씨는 “아이가 나와 같은 삶을 살까 두렵다”고 했다.

“적금을 들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월급의 거의 다를 빚 갚는 데 써야 했던 이아무개(34)씨의 꿈이다. 텅 빈 월급 통장이 아니라 작은 액수라도 계속 쌓이는 잔고를 보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한겨레>가 만난 16명의 청년들은 저축도 보험도 해약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희망마저 포기하진 않았다. “5년만 고생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워크아웃(이자 감면 및 상환 연장)을 하고 있는데, 지금 이대로만 살고 싶어요.”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빚의 굴레를 쓴 청년들은 오늘과 내일을 버티고 있다.

김가윤 기자 

과도한 빚에서 벗어나는 법

과도한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법원의 회생 및 파산제도 등이 있다.

신용회복위에서 진행하는 채무조정은 연체 기간에 따라 방식이 다르다. 연체가 예상되거나 한 달 이내 단기일 경우 ‘신속채무조정’으로 상환기간 연장이나 유예를 받을 수 있다. 연체가 3개월 미만이면 이자율 조정을 하는 ‘프리워크아웃’으로 연체 장기화를 방지한다. 그 이상이 되면 ‘개인워크아웃’이다. 금융기관 채무가 3개월 이상 연체됐고 총 채무액이 15억원을 넘지 않을 경우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청 다음날부터 추심이 중단된다. 확정되면 연체 이자가 감면되고 채무자의 재산과 수입 등을 종합한 상환 능력에 따라 원금도 일부 탕감 가능하다.

법원에서 진행하는 채무조정 제도는 ‘개인회생’과 ‘파산면책’이다. 개인회생은 3년 이내에 채권자에게 분할변제를 하는 조건으로 남은 채무 일부를 감면 받는다. 변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있는 경우 신청이 가능하다. 반면 파산은 채무자가 모든 재산으로도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가능하다. 면책 절차를 통해 남은 채무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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