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역무원이 한 남성에게 살해당한 다음 날인 15일 오후 서울 사건 현장 앞.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을 순찰 중이던 여성 역무원을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가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이미 불구속 기소된 피의자는 법원 선고를 하루 앞두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일방적인 전화, 불법촬영, 협박, 스토킹 등 강력범죄 전조가 수년간 계속됐지만, 한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로 가해자 분리 조처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5일 서울중부경찰서는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아무개(31)씨를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전씨는 14일 저녁 8시56분께 신당역 구내를 순찰하던 피해자 ㄱ(28)씨가 여자 화장실을 살피러 들어가자, 곧바로 따라 들어가 흉기로 휘둘렀다. ㄱ씨는 화장실에 설치된 비상벨을 통해 역무실에 신고했고, 출동한 역무원 직원들과 주변 시민이 힘을 합쳐 현장에서 전씨를 붙잡았다. ㄱ씨는 근처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됐지만, 이날 밤 11시31분 숨졌다.
전씨와 ㄱ씨는 2018년 서울교통공사에 함께 입사했다. 다만 두 사람이 같은 곳에서 근무한 적은 없다고 한다. 숨지기 전 ㄱ씨를 변호했던 민고은 변호사는 “입사 이후인 2019년부터 전씨의 스토킹이 시작됐다. 300차례 넘게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전날 범행 때도 전씨는 흉기를 미리 준비한 채 여자 화장실 근처에서 1시간 넘게 ㄱ씨를 기다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씨는 지난해 10월 초 ㄱ씨를 불법촬영하고 협박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긴급체포된 바 있다. 당시 ㄱ씨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전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서부지법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이때 ㄱ씨는 한달 간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옛 신변보호)를 받았다. 이후 경찰은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했고, ㄱ씨도 연장을 원치 않아 신변보호가 종료됐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안전조치 해제 종료 시점에도 위험성이 계속 존재하면 (연장을) 재심의할 수 있는데, 피해자가 원치 않아 (유치장 유치를 위한) 잠정조치, 스마트워치 지급, 연계순찰 등 다른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직위해제된 전씨는 ㄱ씨에게 연락해 여러 차례 합의를 요구했다고 한다. ㄱ씨는 지난 1월 말 전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했고, 전씨의 1심 선고 공판은 15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살인 혐의로 전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경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보복범죄로 죄명을 변경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ㄱ씨 유족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정복을 입은 직원이 근무지에서 그런 피습을 당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 아니냐. 여성들을 보호하는 노력이 정말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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