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새벽 폭우로 다수의 차량이 침수된 서울 강남구 대치사거리의 배수구가 맨홀 뚜껑이 없어진 채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날 침수된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하수가 역류하면서 배수구 강철 뚜껑이 유실된 곳이 다수 발생했다. 연합뉴스
갑작스러운 도심 폭우는 맨홀을 흉기로 만든다. 강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수십㎏에 달하는 철제 뚜껑이 튀어오르며 인명·차량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뚜껑 열린 맨홀에 사람이 빠지거나 빨려들기도 한다.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8일 밤 서울 서초구에서도 맨홀에 남매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수색 사흘째인 10일 오후 3시께 실종 장소에서 1.8㎞ 떨어진 한 맨홀에서 실종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올 때는 통행을 자제하고, 부득이 한 경우에는 가급적 건물 쪽으로 최대한 붙어 걷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남매가 맨홀에 빠질 당시 이미 무릎 높이 이상 물이 차오른 상태였다. 폭우로 맨홀 뚜껑이 열려 있었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당시 시간당 120㎜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과거 서울 강남역 도로 조건을 재현해 진행한 실험에서는 불과 41초(시간당 50㎜ 폭우) 만에 40㎏ 무게의 맨홀 뚜껑이 공중으로 26㎝ 넘게 튀어올랐다. 시간당 40㎜ 때는 1분, 30㎜ 조건에서도 1분25초 만에 뚜껑이 15~16㎝ 높이로 튕겨 나갔다. 지난 8일 폭우의 6분의 1 수준인 시간당 20㎜ 비가 내릴 때도 4분4초 만에 뚜껑이 열렸다.
지난 8일 밤 수도권 폭우로 맨홀 뚜껑이 들려 도로가 파손되거나 뚜껑이 들썩이는 모습이 도심 곳곳에서 발견됐다. SNS 갈무리
튀어오르는 맨홀 뚜껑 위력은 강력하다. 몸무게 30㎏ 어린이, 50㎏ 여성, 70㎏ 남성이 맨홀 위에 서 있어도 시간당 30㎜ 이상 폭우에서는 모두 뚜껑이 열렸다. 전문가들은 맨홀 뚜껑이 열리는 전조 현상인 공기 빠지는 소리나 뚜껑이 요동칠 때는 즉시 대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맨홀에서 하수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것을 주변에서 구경하는 것도 금물이다. 뚜껑이 튀어오르기 전 현상이기 때문이다.
맨홀 뚜껑이 열리는 수압 충격은 시내버스마저 들썩이게 할 정도다. 따라서 집중호우 때는 맨홀 주변에 주·정차를 하지 말아야 한다. 경차(무게 1105㎏)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앞바퀴나 뒷바퀴가 맨홀 뚜껑을 밟고 있어도 시간당 40㎜ 이상 폭우에서는 뚜껑이 열렸다.
서울시 관내 하수도가 지나는 맨홀은 모두 27만6923개다. 뚜껑 무게는 40~100㎏ 등 다양하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토목환경공학)는 10일 “폭우로 바닥이 보이지 않더라도 맨홀 뚜껑이 열린 상태에서는 물이 굽이쳐 흐르는 흐름이 보인다. 절대 구경거리로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먼 곳으로 대피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