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야구 경기에 앞서 경기 출전 명단을 적다가 아들과 함께한 홍운표 씨. 아들은 이제 새내기 대학생이 됐다. 홍운표 제공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1982년 나는 초등(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그때 오비(OB) 베어스 어린이회원에 가입했다. 운이 좋게도 베어스는 그해 우승을 차지했고 나는 아주 행복한 어린이가 됐다.
나의 우상은 ‘불사조’ 박철순(OB)이었다. ‘학다리 1루수’ 신경식(OB), ‘헐크’ 이만수(삼성 라이온즈), ‘4할 타자’ 백인천(MBC 청룡) 등도 나의 어린 시절을 꽉 채워줬다. 야구를 보면 그저 신났던 지난날이다.
베어스에 열광하던 6학년 꼬마는 어느덧 성장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 5년 차였던 1999년 12월 어느 날, 대학 때 지인들과 대학로에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다가 실업야구를 했던 후배 한명이 얘기를 꺼냈다.
“형, 가끔 소주 한잔 하는 것도 좋지만 새해에는 건강도 챙길 겸 사회인야구 같이 해 보시는 거 어때요?”
2000년 5월5일 경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나의 사회인 야구 인생은 시작됐다. 가끔 그때 사진을 보면서 미소 짓고는 하는데, 당시 모든 팀원의 유니폼, 모자, 스파이크, 글러브 등 모든 장비가 국산 비(B)사로 통일돼 있었기 때문. 야구 초짜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유니폼처럼 야구 장비까지 전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사회인 야구는 진짜 별세계였다. 어릴 적 ‘짬뽕’(손으로 하는 야구) 정도나 했었으니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대학교 동아리 등에서 야구 했던 세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수의 팀원이 야구라는 스포츠는 그저 ‘보는 것’으로만 여겼던 이들이었다. 당연히 타석에서는 삼진을 당하기 일쑤였고, 수비에서는 어이없는 실책이 속출했다. 땅볼을 다리 사이로 흘려보내고 뜬공은 낙하지점을 몰라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그다지 한 일이 없는데도 다음날이면 선발 투수로 나서서 완투라도 한 것처럼 어깨는 왜 그리도 아프던지.
그런데도 왜 그렇게 신나고 행복했을까. 소풍 가기 전날 잠을 설치는 것처럼 야구 경기가 잡힌 전날에는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잘 못 잤다. 다음날 비가 와서 야구가 취소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몇 번이고 일어나 바깥 날씨를 확인하고는 했다.
폭설이 내린 가운데서 겨울훈련을 이어갔던 사회인야구팀. 홍운표 제공
오합지졸이 모여 아주 엉성했던 팀은 5년 정도 합을 맞추며 어느덧 사회인 야구 리그에서 우승컵도 들어 올리고, 전국대회에 출전해 준우승도 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야구의 참맛을 알게 될 무렵, 우리는 야구로 얻은 즐거움의 일부를 야구에 돌려주자는 데 뜻을 모아 큰돈은 아니지만 유망한 야구 선수 한명을 추천받아 월 30만원씩 후원하기로 했다. 첫해 후원 선수는 장충고의 김준완 선수(현 키움 히어로즈)였다.
아마추어 선수 후원을 하면서 놀랐던 기억은 비록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이를 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도 행복해진다는 점이었다. 이후 인천 동산고 출신의 팀원이 많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산고 야구부 선수 한명을 추천받았다. 지금은 메이저리거로 우뚝 선 최지만 선수(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 최지만. AP 연합뉴스
고교 시절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으로 건너간 최지만 선수는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 선수였다. 보이지 않는 선행을 많이 베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 팀 후원금 모금 통장에 찍혀 있던 ‘최지만’이라는 이름을 보고는 가슴이 찡해지고 눈물까지 핑 돌 정도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프시즌 때 가끔 사석에서 팀원들과 만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서로 생활하는 게 바빠서 보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최지만 선수는 한국에 들어올 때도, 명절에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도, 그리고 미국에 도착해서도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넨다.
지금도 야구를 배우고 있는 선수 중에는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개인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많은 선수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 폭을 조금만 넓히는 것은 어떨까? 기업들이 최근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사회적 책임 경영이라는 화두를 참고하면 어떨까도 싶다.
나와 함께 사회인 야구팀을 창단해 22년간 단장직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가 맨 처음 했었고, 아직도 종종 하는 한마디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친구야, 내가 쉰살 넘게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가장 잘한 일은 야구를 한 일이고, 그게 가장 소중한 추억이다.”
홍운표(서울시 서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