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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승섭이 만난 국회 단식 활동가…“차별금지법, 정치가 법제정 결단할 때”

등록 2022-04-22 04:59수정 2022-04-22 07:57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
공정은 외치면서
차별금지는 왜 ‘나중에’인가
사회적 합의? 그것은 기득권의 단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가운데)이 지난 19일 오후 김승섭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가운데)이 지난 19일 오후 김승섭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 법으로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흑형과 살색이라는 단어에 더 많은 사람이 질문하는 세상, 남성과 여성이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같아지는 세상, 신분증 확인이 두려워 투표를 포기하는 트랜스젠더가 없는 세상, 병원에서 보호자 될 수 없어 수십 년을 함께 살았던 동성 파트너를 바라보면서 발만 동동 굴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일하다 다쳐도 공장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는 세상,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늦은 밤 학교 옥상을 서성이는 청소년이 없는 세상, 누구도 홀로 남겨지지 않는 세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9일이 된 미류와 종걸, 두 활동가를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 19일 국회의사당 2문 앞 평등텐트촌에서 만났다.

차별에 왜 반대하는가

김승섭: 차별에 왜 반대하는가

미류: 차별받으면 싫잖아.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나? 차별당했다고 느끼면 기분이 나쁘다. 내가 이 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존중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감각, 그건 인간의 존엄을 건드리는 순간이다. 그런 일상의 순간 뒤에는 역사 속에서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있고.

우리는 나답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게 가능한 조건을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차별금지법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차별금지법을 평등의 문제로만 보면서 자유와 대비시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자유의 문제다. 왜냐하면 “장애인이니까 시설에 있어야 돼”, “아이니까 카페에 들어갈 수 없어” 이런 말들은 개인의 인격을 부정한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차별이라는 벽이 무너져야 하고, 그래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종걸: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형제들을 두고 “왜 나를 차별대우하냐” 불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동성애자라는 내 정체성과 관련해 겪는 문제에는 오히려 그런 말을 더 못하게 된다. 사회구조 자체가 입을 막는다. 한국사회가 나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한들 받아들여질까?” 이런 고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침묵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내가 잘못된 것인지를 되묻게 되고 어느 순간 스스로를 혐오하는 단계에 이른다.

미류: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차별을 경험하더라도, 정리된 언어로 해석하고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하면 스쳐 지나가는 일이 되어 버린다. 그 경험들을 내가 대항하고 싸워야 할 것으로 보지 못하고 계속 넘어가게 된다.

김승섭: 어떤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차별이 어디 있냐”고 되묻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소수자가 차별 경험을 말하려 하면 ‘내가 동성애자다’, ‘HIV 감염인이다’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경험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고통스러워 참게 된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사회에 등장하는 차별 경험의 숫자는 급증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거나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당한 경험을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사회 구석구석에서 혼란이 생겨날 거다. 그 혼란은 차별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국사회가 마땅히 겪었어야 하는 혼란이다. 그 억눌렸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는 과정에서 한국사회가 새로운 무게중심을 찾아야 한다.

혐오, 혐오표현과 차별금지법

미류: 혐오표현을 두고 “그런 말 하지 마”라고 규제하는 것보다도 그에 맞서는 대항 표현이 더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 혐오표현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더라도 여러 대항 표현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지를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된다. “아, 저렇게 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대항 표현은 혼자서 머리를 굴려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되받아칠지를 논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차별적 구조로 인해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이들은 그런 관계를 맺기 어렵고,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시민으로서 한국사회에 등장할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

김승섭: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금지하는 법이 아니다. 성소수자는 차별금지법이 보호하는 수많은 집단 중 하나이고, 혐오표현을 규제하기보다 혐오의 근간이 되는 차별 행위를 4가지 주요 영역(고용, 교육, 행정서비스, 재화·용역의 공급과 이용)에서 막기 위한 법이다. 차별은 무인도에서 한 인간과 한 인간이 만나 생겨나는 일이 아니다. 이 법이 중요한 이유는 차별을 불평등한 역사와 구조를 지닌 한 사회에서 권력관계의 자장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종걸: 실제로 일상에서 혐오표현을 들었을 때 당사자로서는 또 다르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대항 표현을 고민하고 훈련했다고 하더라도 막상 그 순간이 닥치면 스스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리게 된다. 자신이 처한 열악한 조건 속에서 그 표현에 압도당하곤 한다. 그럴 때, 누군가가 함께 해줘야 한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약자가 그런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걸 너무 몰랐다. 차별에 노출된 소수자들이 “먼저 힘을 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왜 당사자 운동이 그렇게 절실한지 무지했다.

차별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이나 인식 변화를 위한 캠페인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여기에 지원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함께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런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오른쪽)이 지난 19일 오후 농성장에서 김승섭 교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오른쪽)이 지난 19일 오후 농성장에서 김승섭 교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나중에’와 ‘사회적 합의’

김승섭: 차별금지법이 한국사회에 던진 화두가 있다. ‘나중에’와 ‘사회적 합의’다. ‘나중에’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국기독교총연합에게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직후, 여성 정책을 발표하는 한 자리에 성소수자 활동가가 기습 발언을 하자 나온 말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절대다수인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상황에서도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나중에’ 다룰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종걸: 2017년의 장면은 내게 너무 익숙했다. 그런 경험을 수없이 해왔으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나중에 발언 기회를 주겠다는 순서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성소수자들이 ‘나중에’를 그토록 상징적인 말로 인식했던 이유는 미루고 미뤄서 아무런 말도 듣지 않으려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류: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항의 전화를 하고 현수막을 걸고 적극적인데, 찬성하는 사람들은 법안을 발의해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걸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차별금지법이 모두를 위한 법이라는 걸 충분히 모르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간다.

무엇보다 국회의원들은 이 법이 절박하지 않다. 그래서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시기 조절이 가능한 문제라고 판단하는 거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모두 마찬가지였다. 총선에서 과반 넘는 의석을 확보한 후에도 2022년 대선을 이야기했다. 대선이 끝나니 또 지방선거를 말한다. 민주당은 절박함이 부족한 것을 넘어서 정치적 유불리를 냉정하게 계산해봤는지조차도 의문이다.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사회적 여론은 매해 높아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용기가 없다.

김승섭: 사회적 합의를 말하는 동안 단순히 법 제정이 미뤄졌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체는 없다. 그 사이 충남학생인권조례나 부천다양성조례를 비롯해 수많은 인권 조례들이 혐오선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초되거나 사라지거나 누더기가 되었다. 혐오선동세력은 계속 그렇게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며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냈다. 지난 10년간 ‘사회적 합의’는 정치인들에게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는 편리한 출구전략으로만 기능했다. 그렇게 한국의 정치는 후퇴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이들이 사회적 합의를 대안으로 말하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기득권의 단어다.

미류: 기득권은 본인들이 합의의 주체라고 생각하니까.

누구도 두고 가지 않는 사회를 위한 법

김승섭: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성소수자는 적용대상 중 하나이지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전부인 양 논쟁이 되고 있다. 왜 차별금지법에서 성소수자를 포함한 그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가. 순차적으로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집단부터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나.

종걸: 실제로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가 성적지향을 포함해 7가지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한 차별금지법안을 내놓지 않았나. 당시 인권단체들이 반대했던 중요한 이유는 국가가 나서서 “그 사람들은 차별해도 된다”는 신호를 직접적으로 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법에서 배제하자는 건 어떤 차별을 합법적으로 승인하는 효과를 낳는다. 당시 사태가 한국사회에서 혐오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김승섭: 연구년을 미국 보스턴에서 보낼 때,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벽에 누군가가 동성애 혐오 발언을 적은 사건이 있었다. 학교가 나서서 학부모 전체에게 메일을 보내고, 학부모-교사 모임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등장했을 때 우리가 그걸 가볍게 넘어간다면, 그 효과는 이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다른 소수자 학생들 역시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을 때 학교가 보살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신호를 주어서는 안 된다.”

미류: 평등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혼자 하려면 너무 힘들다. 어떤 행위를 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공동의 상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의식적, 무의식적 훈련을 하게 된다. 그 논의를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소수자 운동의 연결고리가 될 것

김승섭: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한국사회 소수자들의 삶이 극적으로 나아질 수는 없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은 한국사회를 더 나은 민주주의 공동체로 바꾸어 놓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어떤 가능성이 열릴까.

종걸: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여성, 이주민, 장애인과 같은 다양한 운동과 투쟁 현장을 만나게 됐다. 그렇게 각 운동이 어떻게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워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한 인간이 가진 성별, 나이, 장애, 성적지향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차별을 해소하려는 현실적인 법안인 동시에, 소수자 운동들이 가진 서로의 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미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4년이 되었다. 이 법으로 의미 있는 판례들이 많이 쌓였고 이는 한국사회에서 차별을 규정하는 준거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장애 차별을 ‘장애인의 문제’로만 보게 하기도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이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게 한다. 진정하는 입장에서 편의와 효율이 더 나아지는 면도 있지만, 이런 상징적인 효과 역시 중요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법을 만든다고 차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겠지만’이라고 말한다. 차별을 경험해 본 사람은 차별이 구조의 문제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을 바라게 되는 건 그 구조를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싸움을 위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앞 단식 9일째(19일 기준)

김승섭: 단식 9일째다. 국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종걸: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이 되고,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이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한국사회의 혐오가 더 확산될 수도 있고, 더 많은 공간에서 혐오가 싹틀 수 있다. 차별금지법조차 없다면 차별과 혐오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지금은 지방선거를 핑계 댈 것이 아니라 정치가 결단을 해야 하는 시기다.

미류: ‘국가가 사과하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강서구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설립을 두고,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던 장면을 자주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건 국가였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학교를 짓게 해달라는 부모들이 그런 식으로 싸우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차별금지법을 두고서도 국가가 이렇게 싸움을 방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촛불로 들어선 정부가 소수자들의 삶을 방치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4월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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