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여기 오는 길은 너무 무서웠고, 그래서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행복합니다.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하면, 다시는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올해 마지막 퀴어축제인 제3회 경남퀴어문화축제가 25일 경남 창원시 창원광장 남쪽 도로에서 열렸다.

행사주최 쪽 추산 400여명의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이 참가해 축제를 즐겼다. 또 영남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 케이팝 퀴어 연합, 성소수자 부모모임 등 20개 관련 단체가 부스를 설치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었다. 참가자들이 독특한 복장을 뽐내며 걷는 무지개런웨이와 허리케인김치·왕자·로비 등 가수들의 공연이 축제 분위기를 한껏 북돋웠다. 다양한 종교·정당은 물론 주한 독일·캐나다대사관과 주부산 미국영사관 등도 참가해 성소수자 인권존중 활동에 힘을 보탰다. 참가자들은 대형 무지개 깃발을 앞세워서 거리행진을 하고 축제를 마무리했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무지개로 물들여라’였다. 무지개처럼 다양한 사람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민규 경남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위원장은 “우리 모두가 무지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민준 영남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 대표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고,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길거리 캠페인과 1인시위 등을 더욱 활발히 펼치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회원 써니는 “차이를 차별하면 안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등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톨릭 성소수자 지지단체 아르쿠스 회원 이전수씨는 “경남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퀴어축제를 해마다 안정적으로 개최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을 위해 항상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승려 혜문은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해야 한다. 혐오와 차별의 마음을 녹여서 평등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비드 비가 주한 독일대사관 1등 서기관은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끈기와 지속이 변화를 만들어 낸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을 때까지 퀴어문화축제와 같은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샘 장드로 벨란제 주한 캐나다대사관 서기관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혐오·폭력·차별을 위한 공간은 없다. 모든 사람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 캐나다대사관은 축제 참가자들의 안전한 참가에 도움을 주기 위해 부스까지 설치해서 운영했다.

축제가 열리는 동안 300여m 떨어진 창원광장 북쪽 도로에서는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바른가치수호 경남도민연합’의 집회가 열렸다. 이 단체는 지난 2019년 제1회 경남퀴어문화축제 때도 같은 장소에서 맞불집회를 열었다. 창원중부경찰서는 두 행사 참가자들의 충돌을 막고 교통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관 기동대 10개 부대 등 경찰관 1천여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집회 일부 참가자가 축제장 주변을 서성이며 축제를 방해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남에서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부터 열리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2020년부터 대부분 중단됐다가 올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경남에선 2019년 처음 열렸는데, 2020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에서 열렸고, 2021년부터 중단됐다가 올해 다시 야외에서 열렸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