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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새벽 2시 인스타 메시지가 ‘친구’를 찾게 했다

등록 2022-03-19 08:59수정 2022-03-19 09:57

[한겨레S] 이런 홀로 _ 관계의 재정립

일에 치여 만날 시간 못내고
일상 공유 안되는 답답함에
조금씩 멀어진 학교 친구들
다시 이어지면 또 친해질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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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벽에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가 왔다. 어떤 이상한 인간이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는지 욕이나 한바탕 하려 했는데, 받은 메시지는 친구가 아닌 계정이 보낸 것으로 ‘오랜만이야~ 잘 지내? 나 ××이야’였다. 고3 때 가장 친했던 친구의 호칭이었다. 팔로잉을 하니 역시 그 친구가 맞았다. 그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쭉 보니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사진이 유독 많았다. 친구와 쏙 빼닮은 얼굴에 이 친구가 언제 딸을 낳았나 뭔가 씁쓸해졌다.

감성 충만했던 새벽 탓도 있겠지만 혼자 씁쓸했던 이유는 그가 몇 안 되는 학창 시절 친구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달라도 꾸준히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친구가 먼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도 친하게 지냈었다. 최근 몇년간 일이 너무 바빠 연락이 뜸했지만 그래도 이 친구의 출산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건 꽤 섭섭했다. 나만 친하다고 생각했고 상대는 내가 그런 존재가 아니었구나 싶은 섭섭함이었다.

심란한 마음을 감춘 뒤 다음날 오후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했다. “언제 딸을 낳았어? 귀엽네~”라고 했더니 친구는 웃으며 “내 조카야. 다른 사람들도 착각하더라”라고 말했다. 자신을 많이 닮은 조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인스타그램으로 자랑하는 전형적인 ‘조카 바보’였던 것이다.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했구나 민망해졌다. 그렇게 몇년 만에 근황을 주고받았다. 친구는 여전히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업무에 치이고, 사적으로는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시댁으로 고민하는 등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코로나19가 좀 안정되면 그때는 말만 하지 말고 꼭 한번 보기로 했다. 또 일에 치인다고 귀찮다고 미뤄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됐으니 서로의 근황을 계속 알 수 있게 돼서 다행인 것 같다. 요즘은 서로의 사진에 ‘하트’를 눌러주거나 댓글을 달며 안부를 확인한다. 이게 에스엔에스의 순기능일까.

늘 가까울 수도, 계속 멀어질 수도

그 후로 학창 시절 친구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생각해봤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에 충격받았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도 있고, 대학교 시절 친구들도 있지만, 정작 평소 이것저것 말하고 업무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고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는 오히려 일하면서 친해진 선후배나 동료, 취미 생활로 친해진 사람들이었다.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받기도 쉽고, 자주 보다 보니 어쩌다 날을 잡아야만 만날 수 있었던 학창 시절 친구들보다 더 편했었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대한 불만, 상사에 대한 분노 등을 끊임없이 이야기할 때 사실 쭉 듣기 힘들었다. 상사에 대한 분노는 누구나 비슷하게 공감할 수 있지만 역시 내가 모르는 사람이기에 언제까지고 맞장구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활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대화하기가 편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학창 시절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졌구나 싶었다. 슬프지만 현실이었다.

물론 나만 그럴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취미 생활로 친해진 사람에게 말하니, 본인은 여전히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여러가지 속내를 털어놓고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말이 안 통할 수도 있고 바빠서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학창 시절을 함께했던 추억은 서로 기억에 남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다시 친해질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 못지않게, 아니 더 심한 내향형 인간인 엄마를 보면 또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소극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꺼렸던 엄마는 가정을 우선으로 한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마가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머리가 제법 큰 대학생 시절 제발 자식 뒤치다꺼리만 하지 말고 친구들도 만나고 좀 어울리라고 했지만, 엄마는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됐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엄마가 정작 퇴직을 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그제야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무료함에 지친 엄마는 소일거리로 동네 봉사활동을 다니며 동네 친구가 생겼고 이제서야 학창 시절 친구들과 연락해 점심 정도를 함께 하고 있다. 친구들을 만날 때 단골 소재는 학창 시절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빌린 학창 시절 사진을 가져와 나도 이런 젊은 시절이 있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걸 보면 역시 학창 시절 추억은 기억 속에 남아 언제까지고 구현되는가 싶다.

관계가 유지되려면

지금은 혼술, 혼밥을 즐기며 혼자 있는 걸 너무 사랑하고 내 현재를 털어놓으며 어울릴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들도 많지만 모든 관계가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또 내가 가만히 있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해야 한다.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묻고 만나자고 해야 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런 것들이다. 물론 내가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해도 상대가 나를 거부하면 그 또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인연이라는 게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나도 그런 상대를 만들기 위해 가만히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새벽 인스타그램 메시지 하나가 준 깨달음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번엔 내가 오랜만에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대학 시절 친구에게 연락했다. 내가 업무상 알게 된 사람들과 친해졌다면, 친구는 동네 엄마들 모임에서 친구를 만들어 아이 학업 정보를 공유하고 주말이면 가족끼리 근교로 놀러 다니는 게 즐겁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아~ 너는 계속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 우리 나이 먹어서 편하게 놀러 다니게 말이야”라고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건 여전하구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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