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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빵 열풍의 역설…“미래가 서서히 중단되고 있어서”

등록 2022-03-19 08:06수정 2022-03-19 11:03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_ ‘미래 없음’의 시대

포켓몬스티커·LP판 등 복고 열풍
어두운 미래 전망에 과거 바라기
변화·상상력 고갈 재활용이 판쳐
사이버렉카의 ‘이슈팔이’ 악용도
포켓몬 빵 품귀 현상 등 복고 열풍에서 변화와 성장을 멈춘 현대사회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사진은 11일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포켓몬 빵’. 연합뉴스
포켓몬 빵 품귀 현상 등 복고 열풍에서 변화와 성장을 멈춘 현대사회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사진은 11일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포켓몬 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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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포켓몬 빵과 포켓몬 스티커 모으기가 유행한다. 내가 여덟살, 아홉살 때 유행했던 것들이다. 빵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많은 사람이 편의점 앞에서 긴 줄을 서기까지 한다. 얼마 전까지는 영화 <매트릭스>가 극장에 걸려 있었고 프로게이머 임요환과 홍진호의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세기말 패션이 재조명받고 음반시장에서는 뜻밖에도 엘피(LP)판이 유행하고 있다. 이른바 레트로(복고) 열풍이라고 한다.

유행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그것은 유행이 아니라 주류의 문화로 안착했다고 함이 정확할 것이다. 필름 사진이 부활하고, 과거 기술적 한계로 말미암은 조야한 질감을 매력적인 스타일로 되살리는 저예산 비디오게임, 뮤직비디오 등이 수년째 인기를 끈다. 1990년대 톱스타였던 연예인들은 여전히 톱스타로서 방송가를 점령하고 있고, 20여년이 지난 가요를 리메이크한 노래가 음원차트를 석권한다. 때아닌 트로트도 전국을 강타한다. 원더걸스, 티아라 등이 복고를 소환한 뒤, 그리고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을 계기로 한국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과거의 유령에 의해 잠식된 이래 ‘대중문화를 강타한 복고 열풍’류의 헤드라인 기사는 매년 빠짐없이 등장한다. ‘열풍’이 아니라 ‘공기’ 자체가 된 지 오래다.

어두운 미래, 과거 그리워하는 시대

새로운 것은 없고 리메이크나 리마스터만 대중문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변화와 성장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고갈되고, 이제 남은 것은 재활용뿐인 것 같다. 선진국들에서 문화는 사실상 변화와 성장을 멈췄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피셔는 이를 두고 “미래가 서서히 중단되고 있다”(slow cancellation of the future)고 표현했다. 이른바 ‘미래 없음’의 시대다. 앞이 보이지 않아 엄청난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으레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나온 일이기 때문에 확실한 과거에서부터 일정한 안정성을 희구하며, 과거를 어렵게 살았지만 적어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던 ‘호시절’로 재평가하는 향수로써 현재의 불안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대중문화 텍스트에 열광한다.

오늘날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향수를 연구하는 미국의 문화연구자 그래프턴 태너는 마크 피셔의 명제에서 더 나아가 향수에 젖어 무기력해진 시대를 가리켜 “시간이 시계를 잃어버렸다”(The hours have lost their clock)고 표현한다. 말인즉 시간의 경과가 시침과 분침으로 표현되는 것과, 시간의 흐름 그 자체가 분리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태너에 따르면, 갈수록 일상과 노동시간의 구분이 희미해짐에 따라 현대인은 점점 더 시침과 분침에 얽매여 살아야만 하게 되었고 그 결과 통시적인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게 되었다. 시간관념은 상실되고 지금 이 순간 여기의 나의 상태, 나의 기분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나의 형편, 나의 정서가 과거의 기억에까지 소급되며 평가의 기준이 된다.

시간관념의 상실은 지금 당장의 나의 감정 상태, 나의 욕망을 근거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지금은 맞으니까 그때는 틀렸다’거나, ‘지금 틀렸으니까 그때도 틀렸다’는 식이다. 모두 판단 기준은 지나온 역사를 통해 누적한 경험과 기억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기분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도대체 언제 코로나19 백신을 들여올 거냐며 잔뜩 불만을 표하다가, 이 백신은 좋고 저 백신은 불안하다며 잔뜩 불만을 표하다가, 접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며 잔뜩 불만을 표하다가, 접종률은 올라갔지만 원치도 않는 백신을 강제한다며 잔뜩 불만을 표하다가, 서구 국가들이 그동안 어떠한 아비규환을 겪었는지 다 봐놓고도 서구 국가들의 지금 상황과 비교하며 한국 정부의 방역이 완벽히 실패했다고 비난한다. 집값 폭등으로 매우 불만이지만,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하면 그 전에 ‘영끌’로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의 불만이 부각된다. 이러한 언론 보도들을 보면서, 대중은 어찌 됐건 부동산과 관련한 강한 불만을 누적한다. 이 모든 불만과 비난이 정말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지금 당장의 내 기분이 모든 판단의 준거가 되면 가능하다.

‘지금’에만 집착하는 세대

한국 청년들의 시간관념의 상실을 가속화하는 것은 엉뚱하게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온갖 사이버렉카들이다. 남의 콘텐츠를 가져다가 조회수 장사로 도용하는 사이버렉카는 오래전 과거 웹상에서 한두 차례 소란이나 열광을 일으켰던 유머 콘텐츠나 목격담, 경험담 등을 다시 건져 올려 요즘 일어난 일로 둔갑시켜 네티즌들로부터 또 한 차례의 반응을 유도한다. 이것이 단순히 ‘뒷북 유머’ 게재에 머무른다면 문제랄 것도 없지만, 몇 해 전 사건을 채굴해서 최신 화제인 것처럼 눈속임하는 ‘이슈팔이’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매우 크다. 이미 해명됐거나 해결된 이슈와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필요한 갈등이 다시 발생하고, 이에 따라 때아닌 논쟁과 팩트체크를 반복해야 해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 사이버렉카는 팩트체크에 관심이 없다. 사이버렉카를 보며 더 이상 문제가 아닌 일에 대한 엉뚱한 분노를 키운 사람들은 팩트체크를 접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설사 팩트체크 기사를 접하더라도 분노를 누그러뜨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금 당장의 기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는 상실되고 지금만 남았다. 하지만 ‘지금’이란 인지하고 붙잡으려 하는 순간 과거로 지나가버리는 것이며, 지나간 과거와 비교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함으로써만 윤곽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 자체로 완전히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따라서 유령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아무런 내용도 없는 유령만 붙들고 정치를 소비하고 투표한 결과가 오늘의 한국이다. 그리고 이제 불길한 미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는지 2번에 투표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내훈 |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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